김성원 교무
김성원 교무

[원불교신문=김성원 교무]  “교무님, 원불교가 무슨 종교에요?” 
친구 따라 입교한 한 고등학생의 질문이다. 교당을 3년 동안 다녀놓고 원불교를 모른다니,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생 교도는 3년 내내 교당에 와서 놀기만 했다. 맨날 장난만 치고, 심지어 법회를 보는 토요일이 아닌 평일에 남자친구와 놀러 와 수다만 떨다 간다. 어쩌다 법회를 보면 죽비 3타를 재촉하는 졸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원불교를 설명해야 하는데, 너무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해?” 학생은 “친구들과 종교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원불교’라고 대답하니 ‘무슨 종교냐’는 질문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답을 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교당에 놀러만 왔던 학생이 원불교를 공부하려고 한다. 드디어 교무로서 나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다. 열정을 다해 원불교를 설명하니 또 다른 질문을 한다. “근데 교무님은 왜 스님처럼 머리를 안 미세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시절 따라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도 교화도 그런 것 같다. 하루아침에 다가오지 않는다. 다 때가 있다. 처음 부임했던 날, 교법을 재미있게 알려주기 위해 꽁꽁 머리를 싸매며 연마했다. 학생들은 재미있어는 했지만,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은 날로 떨어졌다.

청소년교화를 하면서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떠올린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학생과 청년들이 교당을 거쳐 갔다. 그중에는 법연이 된 인연도 있고, 안타깝지만 잠깐 반짝였다 사라진 인연도 있다. 

그 인연 한명 한명이 소중해 신중함과 정성으로 불공했다. 하지만 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책과 아쉬움을 놓지 못할 때, 시절 인연이라는 단어를 다시 새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인연이 있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인연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마음을 내어 교당에 나오는 청년이 생겼다. 정말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청년은 어릴 적에 교당을 다녔다고 했다. 해외 유학으로 오랜 시간 교당과 멀어져 있었는데, 교당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걸음 해준 청년을 이것저것 챙겼다. 그런데 이것을 불안함으로 느꼈는지 청년이 말했다. “교무님,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때 느꼈다. ‘아, 되는 인연이구나.’ 그날 이후 청년에 대해 과한 정성을 덜어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교당을 잘 다니고 있다.

우리는 교화를 ‘씨앗 심고 꽃을 피우는 것’에 비유한다. 즉 씨앗을 심는 시절이 있고, 꽃을 피우는 시절이 있다는 의미다. 어릴 적 교화의 씨앗이 잘 심어진 덕분에 청년교도는 지금 교당을 잘 다니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되는 인연은 어떻게든 된다. 공부든 만남이든 인연이라면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연’이 아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게 있을 뿐이다. 정말로 다 때가 있다. 올해가 그때이길, 그렇게 시절 인연이 닿기를, 새해 소망으로 염원해본다.

/ 중구교당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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