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깨달음에 대해 내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궁금하지만 차마 묻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그래, 그 말을 하는 너는 그 자리를 보았냐’이다. 계속해서 이 불필요한 질문이 맴돌게 될까 싶어 미리 밝히고 들어가는 게 좋겠다.

내게 그 일은 10여 년 전 우연히 일어났다. 출가 이후 그다지 열심히 산 것도, 구도심이 장해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편도 아니었다. 남들 아는 바와는 달리 워낙 책 읽기 싫어하는 내가 무슨 연유인지 그 즈음엔 깨달음에 관련된 책들에 푹 심취해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들을 기술한 부분은 황홀하기 그지없었으며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시간과 처소를 잊은 삼매상태에서 어느 순간 글 너머, 소위 행간이 살아있는 영상처럼 곧 실재로 눈 앞에 펼쳐졌다. 경계선 없이 여기서 보는 자와 이 허공과 경계선 사라진 저 소나무의 운영자가 동일자라는 확연한 진실! 눈앞에 이 텅~빈 허공이 전지전능한 완벽한 생명체로 생생하게 보.여.졌.다!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온 우주에 오직 이것 하나뿐이었다가 동시에 일체의 존재와 일체의 소리가 다 한 운영자의 조화로운 구성체이며 화음이었다. 오직 그 하나의 신령함이 온 우주에 가득해 바위를 보나 허공을 보나 나무를 보나 사람을 보나 한몸이었고 일체가 지금 보는자 오직 나였다. 

견성은 그 자체로 아무 힘이 
없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비로소 참 수행, 참 신앙을
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선 것일 뿐.

‘아~ 이게 나로구나!’ 이 텅빈 만능자, 온 우주 천상천하가 나 하나로 운영됨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연했다! 이 외에 더 이상 구할 것도 없었으며 모든 답이 한 번에 절로 해결됐다. 벅찬 마음으로 경전을 펼치니 일체 교리가 하나로 쫙 꿰어졌고 타종교 경전도 마찬가지였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은혜가 무량해 오열하고 오열하는 일들이 거듭됐다. 이 쉬운걸, 이 아무것도 아닌 걸 그리 어렵게 찾아 나선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였다. 

이쯤 되면 그 책이 대체 무엇인지 엄청 궁금들 할 것이다. 허나 책의 문제가 아니니 접어두시라. 내게 책을 추천해 준 이들에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깨달음으로 인연 될만한 문장들을 타이핑 해 제본하여 여럿에게 나눠줬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분명하고 쉽고 별것 아닌 일이라 누구든 알아듣겠지 싶어 한 도반에게 쭉 설명하니 그가 순간 툭 열리는 게 아닌가. 아, 이게 되는구나! 증명된 이후 나의 일은 이것 하나로 정해졌다. 죽을 때까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것을 전해 영생 문제를 해결하도록 인도하리라는 서원이다. 그 서원 속 깨달음에 인연 된 이가 수십 명에 이른다. 더불어 상대가 진리를 확연히 본 것이 맞는지 이해하는 정도인지 깨달음의 여부가 알아지는 힘도 저절로 생겼다.

한 소식 얻었다는 사람이 근데 뭐 별반 달라진 게 없냐고 위아래로 훑어보지 않길 바란다. 깨달음이 곧장 실행이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라 여긴다면 단언컨대 그대는 마음을, 일원을, 성품을 털끝만큼도 보지 못했다는 반증이니, 인정하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게 좋으리라. 

견성은 그 자체로 아무 힘이 없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이제 비로소 참 수행, 참 신앙을 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선 것일 뿐이다. 깨친 이들이 제일 먼저 변하는 것은 무한대로 열린 의식세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깨침의 여부를 알 수가 없다. 한 번 이 자리를 정확히 본 이는 언제든 돌아갈 자성, 진리를 훤히 아는 까닭에 이생의 일에 조급하지 않으며 긴 호흡으로 영생을 보며 길을 간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깨달음의 행운이 있기를….

 /변산원광선원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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