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칼럼

 올해 대입 수능시험이 이제 막 끝났다. 시험치는 자녀들을 위하여 아침부터 끝나는 그 시간까지 법당에 앉아 일원상서원문을 독경하며 자식이 시험을 잘 치루길 기원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한다. 이렇게 자녀를 대학에 보낸 한 교도님께서 하루는 푸념어린 하소연을 하신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입시 때문에 공부에 몸과 마음을 묶고 보내야만 했던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더니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이리저리 다니며 공부와는 담을 쌓고 놀기만 한다는 것이다. 교도님의 눈에 비친 자녀는 다양한 칼라의 머리염색, 다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청소년, 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만 할까?


 모든 사람들은 청소년의 시기를 맞이하고 보냈다. 한번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 청소년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때 그 시대에서 가장 멋있어 보였던 모습을 추구하였고, 아니면 하고 싶은던 욕망의 순간이 있었던 것을……. 그러기에 우리 기성세대들은 과거의 관점으로 그들을 무조건 야단치고 나무라서는 안될 것이다. 언제 그들이 인생을 생각하고, 옳고 그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있었던가? 갑작스런 자유의 공간은 그들의 마음과 몸을 아무런 주관없이 유행에 모방하기를 유혹한다. 그러나 이것도 한 때가 아닌가 싶다. 먼 훗날 그들도 기성세대가 되면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청소년 그들은 다양한 경험과 시행 착오속에서 서서히 깨달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변화되는 가장 가까운 청소년인 내 자녀의 모습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사랑스런 눈빛으로 믿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며 울타리가 되어주자.
〈대구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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