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질 때까지 ⑤

 경계를 대해서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글러질 때마다 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를 들이대서 마음대조를 해보니 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는 그 자체가 의두요 성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성리는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이요(정기훈련법)」이라고 하셨듯이 「알고 해결하자」가 아니고 「해결하여 알자」는 것이 원불교의 성리요 주세불이 내놓으신 一圓性理임을 알게 되었다.


 일상수행의 요법 1, 2, 3조는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이고 그것을 실생활에 풀어쓰는 것, 즉 그 요란함, 그 어리석음, 그 그름을 가지고 마음대조 하는 것이 해결하는 것이고 그러면 성리는 저절로 알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법은 사용하기가 간편했다.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은 물론 유무식, 남녀노소 선악귀천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이 가능해서 쉽고 간단하게 대조에 들게 하여 누구나 다 광대무량한 낙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정해 놓으신, 주세불의 대자대비가 어린 새 시대의 새 법이며 일원대도를 대원정각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바른 공부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종경』 수행품 22장에 「다시 정법시대가 오면 새로이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실지로 훈련하여 구전심수의 정법아래 사람 사람이 그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하나니」라고 하셨고 『정산종사 법어』 법훈편 7장에 「우리는 평생 일상수행의 요법만 읽고 실행하여도 성불에 족하느니라」고 하셨듯이 일상수행의 요법은 대종사님의 경륜과 포부와 희망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았고 어느 경계 어느 일이건간에 응용이 안되는 것이 없고 응용해보면 볼수록 그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로 마음대조를 하니 점차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 되어지고 「그 요란함, 그 어리석음, 그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 혜, 계를 세우자」로 마음대조를 하니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되어져서 저절로 정신의 세력이 확장되어, 저절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러한 마음대조를 정기일기로 기재하여 조사하는 것이야말로 자기훈련이면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하는 첩경이요 물샐틈 없는 수행방법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정기일기를 기재하지 않는 마음대조는 마치 재료없이 말로 요리를 하는 것과 같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되어지는 기쁨을 맛보고 그로 인하여 힘이 생기니까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내게 힘이 있을땐 평소 마음대조에 대한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질 뿐더러 상대방도 나에게 끌려오듯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내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대해보니 서먹거려서 아무 말도 못하겠고 오히려 서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교화는 자기공부이며 자기가 체험하고 느껴본 만큼 되어진다는 말씀이 실감이 났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지만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구전심수의 정법인 문답ㆍ감정ㆍ해오를 통하여 천 번 만 번 깨우쳐주실 스승님이 계시기에 마음은 든든하기만 하다.


〈대전충남교구 공주교당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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