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사위 열반 공동기념제사」 기념문

반 공동기념 제사」에 친히 지어 낭독한 기념문 全文을 5월8일 어버이날을 기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효심을 앙양하기 위하여 현대문으로 옮겨 싣는다. [편집자주]
"부모의 공덕은 하늘같아서 다함이 없어라"
 옛글에 말씀하여 가라사대 누구나 그 부모의 공덕을 말하자면 하늘 같아서 다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 공덕이 과연 어떠한 공덕일까요. 곧 다름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쳐 인도하여 주신 공덕이 있는 연고입니다.
 그런즉 이상 세가지 공덕 가운데 한가지 공덕만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 뼈에 사무친 정곡(情曲)이 한(限)이 없거든 하물며 그 세가지 공덕이 구족(具足)하신 부모이겠습니까. 천하에 부모된 자가 그 자녀에 대하여 혹 낳아주시기만 하고 길러주는데에는 충분치 못한 분도 있고, 혹 길러주는데까지는 충분하다 할지라도 인도하여 줄줄은 모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이 세가지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공덕을 주셨으니 그 낳으시고 기르실때 모든 정곡은 이제 구구이 다 설명하지 아니하더라도 저를 인도하여 주실때의 모든 경력(經歷)만으로도 어찌 지필로써 그 진정을 다 쓰오리까.
 소자가 십여세의 어릴때에 우연한 발심으로 이 모든 일과 이치를 알고저 하온바 부모님께서 미리 그 뜻을 알으시고 깊이 동정하사 일심정력으로써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을 마지 않으셨습니다.
 소자가 산신을 만나려 할 때는 산신 만나는 데에 모든 준비를 다하여 주시었고 도인을 만나려 할 때는 도인 만나는 데에 모든 준비를 다하여 주시었고 수양할 처소를 원할 때는 수양처소를 구성하는 데에 모든 준비를 다하시어 아직 미거한 소자에 향하여 미래의 큰 희망을 가지시고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염염불망(念念不忘)하사 모든 생각과 모든 정성과 모든 활동이 오로지 소자에게로 집중되셨습니다.
 그러하든 중 아버님의 운명이신지 소자의 무복이온지 과(過)한 고령도 아니신 그때에 많은 한을 그대로 가지시고 거연히 열반에 드시사 소자로 하여금 천붕지통을 만나게 되오니 세상 염량(炎¶J)과 인간 고락을 맛보지 못한 저로서 그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오며, 어머님께서는 두 분이 하시던 일을 독담(獨擔)하사 만반고통을 겪으시면서 소자를 보호하셨사오나 이미 기우러진 가사를 어찌 쉽게 바로 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산은 탕진하여 여지가 없어지고 소자의 정신은 의희(依희)한 몽중(夢中)을 면치 못하여 평생 숙원인 공부에 대한 준비는 고사하고 우선에 의식의 길이 없어서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극도의 궁경(窮境)에 들었사오며 더욱이 육신의 병고가 침중(沈重)하여 외인에게는 가위(可謂) 폐인의 칭호까지 받게 되었사오니 그때에 어머님 생각이 어떠하셨사오며 그 고생이 어떠하셨을 것입니까.
 그러하든 중 지난 병진(丙辰), 정사(丁巳)에 이르러서 천명이 그러함인지 부모님의 정성에 감화됨인지 소자의 정신에 일조의 서광이 비춰와서 평생 숙원인 일과 이치에 대강 분석이 나오며 양양한 전도를 가히 예측할 만한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8, 9인으로 더불어 불법연구회기성조합을 설시하고 다음으로 영광 길룡리 방언을 착수하게 되온바 그때에 어머님은 오직 기뻐하사 사업의 전진을 심축하시면서 전후에 또 모든 보호를 주셨사오며 그후 방언이 차차 끝나고 소자는 또 불법연구회를 창립하기 위하여 어머님을 떠나 부안군 봉래산으로 가게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어머님께서는 거기에 대하여 조금도 불평이 없으시고 소자의 공부 말씀에도 더욱 신념을 가지시며 저의 아우 동국(東局)을 데리시고 안락의 생활을 하시면서 오직 소자의 경영사업에 발전을 희망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하든 중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운명이라 소자의 경영사업이 아직 완전한 토대를 보지 못하고 공부의 회상이 아직 정식으로 열리기 전에 어머님이 거연히 열반에 드시오니 소자의 부모에 대한 깊은 한은 천추에 잊지 못하게 되었나이다.
 이제 한번 과거를 돌아본다면 어릴때에는 철이 없어서 능히 부모의 공덕을 알지 못하다가 거연히 아버님을 이별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조금 소견(所見)을 얻은 후는 회중사(會中事)에 몰두하여 어머님을 한번 가까이 모시지도 못하였사오니 부모님의 저에게 대한 모든 정성과 모든 고통과 모든 공덕은 참 하늘같아서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없사오나 소자의 부모님에 대한 행동은 한가지도 도리를 차린 곳이 없사오며 더욱이 육신 봉양에 대하여는 신 한 켤레 옷 한가지라도 변변히 받들어 본적이 없는듯 합니다. 부안 봉래산에 머물면서 뵈오러 올 때엔 혹 노비(路費)에 남은 돈이 있게 되면 처음에는 어머님을 생각하여 다만 조그마한 봉양물이라도 사서 드릴까 하였다가 혹 어머님이 저를 생각하신 정이 과해져서 떠나올 때나 갈려있을 때에 상심하실까 하여 몇번 취사하다 필경은 중지한 일이 많았었더니 이제와서는 그것이 후회되옵고, 깊고 미망(未忘)한 한을 다시 누구를 향하여 설화(說話)할 곳이 없는 듯 합니다.
 그러하오나 한가지 다행한 바는 소자가 아직 여러 대중에게 별다른 이익을 끼친 바가 없사오나 대중이 자연 저를 신앙하며 따라서, 부모님을 추모하여 대희사(大喜捨)라는 존호를 올리고 회중에서 매년 열반기념을 받들게 되었사오니 비록 부모님이 생존하셔서 오늘의 현상을 보시는 것만은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 많은 대중이 부모님을 위하여 염불을 하여 드린다, 심고를 하여 드린다, 헌공비를 바친다 하여 모든 정성을 다하여 드릴 때에 소자의 생각도 반분(半分)이나 그 한이 풀어질 듯 하오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감루(感淚)를 금치 못하겠나이다.
 부모님이시여, 지금 어느곳에 계신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고등락(移苦登樂)이 되시며 우연한 복이 오시사 쉽게 이 회상에 출현하시어 전일에 부자와 모자의 미진한 정을 풀게 되옵고 육신의 인연과 법의 인연을 합하여 세세동락(世世同樂)하기를 믿사옵고 또한 심축하여 마지 않습니다.
 부주(父主)이시여, 모주(母主)이시여, 밝게 통촉하시나이까.
시창(始創)   년 12월 1일, 소자(小子) 중빈(重彬) 재배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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