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일은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54주년이 되는 날이며 대종사와 역대 선진들께 추원보본의 향례를 올리는 6·1 대재이다.
 원기28년 6월1일,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통곡하는 천붕지통(天崩之痛)의 큰 슬픔이었다.
 『원불교교사』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원기28년(1943, 癸未) 6월1일, 소태산 대종사께서 열반하시었다.
 이해 5월16일, 총부 예회에서 설법하시기를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범부가 깨쳐 부처가 되며, 제자가 배워 스승이 되는 것이니, 그대들도 어서 어서 참다운 실력을 얻어 그대들 후진의 스승이 되며 제생의세의 큰 사업에 각기 큰 선도자들이 되라. 육신의 생사는 불보살이나 범부중생이 다같은 것이니, 그대들은 또한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으며, 공왕공래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라. 생사가 일이 크고 무상은 신속하니 가히 범연하지 못할 바이니라」 하시고 그날 오후 위석(委席)하시어 15일후인 6월1일 오후 2시반, 거연히 열반하시니 세수(世壽) 53세요, 개법(開法) 28년이었다. 모든 제자들의 애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일반 사회의 차탄(嗟嘆)하는 소리 연하여 마지 아니하였으며, 허공법계와 삼라만상이 다같이 슬퍼하는 기상을 보이었다.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신지 올 해로 54주기를 맞게 되었다. 대종사께서 이 땅에 오신 19세기 말 당시의 시국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큰 격동의 시대요, 일대 전환기였다.
 대종사의 탄생연대가 1891년이니, 경술국치(庚戌國恥)로부터 예고된 전운(戰雲)이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일제침략과 식민지 시대로 이어지는 민족수난기에 새 회상 건립과 중생제도를 위해 밤낮을 잊으시더니 드디어 해방을 두해 남겨두신채 거연히 열반에 드신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열반을 미리 준비하신듯, 이미 2년전에 게송을 반포하시는 한편, 제자들에게도 먼 수양길을 떠날 것임을 예고하셨다.
 대종사께서 열반하신 1943년은 2차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강제징용과 인력동원 등 전시동원체제의 소용돌이 속에 긴장감이 계속되던 때였다.
 또한 대종사에 대한 일경(日警)의 주목과 교단에 대한 간섭은 날로 심하여 온갖 구실을 앞세워 교단 간부를 구속하고, 의식수입을 국방헌금하도록 강요하는 등 조심스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대종사께서는 스스로 오래 머무르기 어려움을 짐작하신듯 「저들이 나를 아주 없애야겠다고 계략을 꾸미고 있나니 미리 떠나야 할까 보다」 하시고 그동안 계획해오신 사업추진과 정전편수를 서두르셨던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54주기를 맞아 당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시국의 긴박함 속에서도 의연(毅然)하신 태도로 일제의 박해를 피해가시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열반상을 보여주신 대종사의 거룩한 생애를 기리고 닮아가는 일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은 역사의 질곡(桎梏)과 박해는 물론, 생과 사의 문제까지도 총체적인 삶의 숨결로 승화시킨 동체대비(同體大悲)요, 천만무량 방편이 아닐 수 없다.
 대종사께서는 일원의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등불을 거듭 밝혀주셨으며, 물욕으로 도둑맡고 사는 마음을 되찾아 주셨다.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 54주기를 맞아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일원대도를 몸으로 실천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온 누리에 빛이 되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명심하자.

<조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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