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와 협력으로 교단 기강 세워야 한다”

화합풍토 조성과 법치교단 정착에 앞장
30여년 교당교화, 감찰행정으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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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생활하다 어느덧 임기가 다 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찰원 사무감사를 하면서 느낀점은 금융기관이나 일반기관들도 반드시 인사 행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직장에 오래 있다보면 타성에 젖기 쉽고 동지들간에 대화가 끊어지는 관계로 중앙총부를 향하는 마음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원기79년 11월 감찰원장에 취임한 이래 만 3년간의 성과에 대해 질문한 기자에게 본타원 양혜경 교무(68)는 이렇게 말했다.

양 교무는 감찰원장직 임기가 다 되어가지만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달력에는 행사일정이 빼곡이 적혀있다. 그만큼 일이 많다는 증거다. 한시라도 감찰원장 직분에 소홀함이 없이 점검한다. 이속에는 예방감찰을 위한 상담업무와 각종 주요회의 결의사항 이행을 살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관계로 감찰원의 감사 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내비친다.

『각 기관에서는 감찰원 감사를 받으면서 중앙을 이해해야 하고 자신들의 마음을 챙길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감찰원에서는 기관의 상황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중앙에 보고함으로써 행정체계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종법사님께서 주창하신대로 감찰행정의 요제인 사고의 예방과 사고 부작용을 극소화 할 수 있고, 모든 사고는 전화위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양 교무의 한마디 한마디는 정곡을 찌른 간절함이 배여 있다. 그만큼 교단을 아낀다는 증거다. 부드러운 말속에서 수도인의 세밀함이 느껴진다. 법치교단의 정착과 서원정신 환귀, 화합풍토 조성을 위한 일언이라 더욱 친밀감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가 감찰원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절실히 느낀점은 감찰원 내에 회계학을 전공한 전문요원으로 감사반을 구성하는 일이다. 감찰원 사무가 마비되는 일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다.
『감찰원 자체 힘만으로 감찰행정의 원활을 기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동안 서로간의 이해 속에서 감사의 원활을 기해 왔지만 이제는 감사만을 위한 전문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고 충고와 협력으로 교단의 기강을 세워 나간다면 교단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양 교무가 이처럼 감찰원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복중의 복이라고 강조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두 번의 심장 수술에 이어 작년에는 안과 수술을 했지만 그래도 교단에 일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교단의 화합 풍토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는 양 교무는 전무출신을 많이 배출한 남원 홈실 밖시가문의 인근 동네인 남원군 남원읍 쌍교리에서 출생했다.
남원 용성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발심, 원기41년 27세의 늦은 나이로 출가했다.
「전무출신 생활을 하는 동안 공심과 공부심을 잊어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면에는 후진을 생각하는 깊은 배려가 배여 있었다.

『감찰원장직을 수행하는 등 한 평생 살피는 마음으로 살게 된 것은 전주 부교무를 거쳐 서울 수도원 총무시절 구타원 이공주 종사님을 모시고부터입니다. 구타원님은 평소 적은 돈은 아끼시되 큰 돈은 아낌없이 내놓으신 큰 사업가이시고 큰 공심가 이십니다. 교단창립에 일호의 사심이 없이 바치셨습니다. 구타원님으로터 교단을 향한 순일한 공심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타원 종사로부터 훈습받은 공심과 교단사랑은 30여년의 교당 교무 시절에 교화에 활력을 불어 넣는 동기부여가 됐다.

원기38년 정읍교당 교무 재직시 시골 교당 교무들을 챙기는 한편 입교 배가운동을 펼쳐 단연 으뜸을 차지했다. 원기56년부터 62년까지 7년동안 군산교당 재직시는 故 희산 오철환 대호법의 염원과 맞물려 7개의 연원교당을 내기도 했다. 서군산·동군산·남군산교당 등이 한꺼번에 봉불식을 한 것은 지금도 희자되고 있다. 서천·장항·대야·도순교당 창립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로인해 개척교당 불리기 우수상, 문화교화 장려상 등을 수상했다. 이 일들은 교화단 교화에 성패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이면에는 당시 교화부장으로 재직했던 좌산 종법사가 역설한 교화단 교화의 필요성을 실행한 결과다. 원기67년 정읍교구장 재직시에도 교화단 교화와 청소년교화에 최선을 다했다. 3년동안 입교자 1천3백여명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정읍교당 청운회 조직도 교화단 교화의 산물이다.

원기76년 서원관 교감으로 재직시에는 서원관 지도교무들의 한계를 벗어난 상담을 하면서 호랑이 총사감으로 통했다. 남녀문제, 도량상규등에 대해 상담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울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여러번. 강약을 조절하면서 전무출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이같이 볼 때 양 교무의 감찰원장직은 교당교화 30년과 서원관 총사감을 거친 결실의 산물이다.
『그동안 건강이 좋지 못한 몸으로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님들의 훈증과 출가 재가 교도들의 합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환절기에 모든 교무들의 건강이 염려스럽습니다』

그는 구타원 종사가 생활했던 청하원에 거처하면서 일과로 득력하기 위해 수양에 열심이다.
양 교무의 하루 일과는 새벽 좌선으로 시작된다. 요즘은 기도생활을 한다. 아침기도 후 조회와 업무로 하루를 보낸다.
그는 그동안 감찰원 업무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전무출신들이 서원정신으로 생활하고 교당이나 기관이 공의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무출신은 무엇보다 서원으로 자신의 삶을 성숙시켜 나가야 합니다. 순경과 역경을 당하더라도 서원으로 극복하고 동지들간에 막힌 일이 있어도 불공하는 심경으로 살다 보면 자연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법치교단에 걸맞게 교당과 기관도 공의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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