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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가면 인생을 볼 수 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갈데없어 앉아있는 사람, 짐든 사람, 빈손인 사람, 한가하게 신문을 보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 헐레벌떡 뛰어와 겨우 기차에 오르는 사람….

월요일 새벽 3시30분 영등포역에 내렸다. 고향에 다녀오는 사람들의 손마다엔 보따리며 가방들이 배가 불룩하다. 앞서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양손으로 네다섯개의 짐을 겨우 겨우 들고 가는걸 보고 다가가 두어개 덜어 드렸다. 만만치 않게 무겁고, 비닐봉지는 따로 손잡이를 하지 않아 손바닥 살을 파고드는 듯 아플 정도로 제법 무거웠다. 미안해 하면서도 택시타는 곳까지 좀 부탁하잔다. 어차피 가는 길이라고 하며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니 나하고 같은 방향이다. 내가 내리는 곳에서 조금 더 가는 곳이란다.

함께 택시를 탔다. 내리즈음 해서 가방을 열고 종이를 꺼내어 비닐봉지 손잡이를 감았다. 혼자서 그 짐을 다 들고 내려서 집에까지 가기가 얼마나 무거울까. 더구나 내가 들어준 그 비닐봉지는 손을 무척이나 아프게 하던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앞 좌석에 앉은 그 아주머니께서 살짝 손을 내저었다. 바스락러니 계산하려고 그러는줄 알고 그냥 내리라는 뜻이다.

택시에서 내려 서서 잘 가시라고 인사하니 그 마주치는 눈에 감사와 신뢰와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덤으로 3천여원의 택시비를 아끼게 되었다. 이는 1백여명의 북녘동포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돈이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진리는 그렇게 소소영령하다. 그리고 빠르다.

어린이, 학생, 청년들과 함께 하다보면 마음 먹은대로 잘 안될 때가 많다. 그만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왜 이러는걸까 하며 기운이 빠질때도 있다. 미울 때도 있다. 섭섭할 때도 적지않다.

왜 섭섭하고 미웁고 기운이 빠지는 것일까?
아마 대가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게다. 소소영령하고 빠른 진리의 감응과 보응을 잊고서 내 마음대로 그 주고 받는 이치를 정하려 한데서 그러할게다.
무거워 보이는 그 아주머니의 짐을 덜어 주려는 자연스러운 마음, 그리고 손이 덜 아프라고 종이를 감아주는 그 마음 속에는 어떠한 바라는 마음도 없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어린이, 학생, 청년들을 지그시 바라모면서 무거운 것은 없는가, 아픈데는 없는가, 고민은 없는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살피고 챙기며 그저 그 자체로 행복해하는 교무이고 싶다. 그래서 「너 교무님처럼 전무출신 해보지 않을래?」하는 물음에 차츰 호감의 눈빛으로 다가오는 몇몇 학생들로 그 소소영령한 대가가 받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역에 가면 인생을 본다.
오고 가는 그 걸음들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감사와 사랑과 신뢰가 가득한 눈빛으로 오늘도 나는 영등포역을 지킨다.

〈교무, 신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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