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 교단에서도 「바루자 살리자」운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우선적인 실천으로 금모으리기를 하고 있고 大山상사님께서도 교의회 의장단에게 행운의 열쇠를 하사하심으로써 교단적 관심을 대표로 보여주셨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한쪽에서는 들불처럼 번져가는 가운데 또 몇가지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

첫째는 일반 시민들의 이런 작은 정성이 모여서 과연 현실적으로 무슨 힘을 발휘하겠느냐는 것이다. 금괴가 나와야지 돌반지나 내다 바치는 우리들은 남이 한다니까 뒷북이나 치는게 아니냐 하는 냉소어린 반응이다.

둘째로는 금값이 떨어진다는데 뒷북만 치는 것이 아니라 값으로도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매우 현실적인 의문이다.
3천톤에 3백억불의 가치로 추산된 금중에 얼마나 나올 것인지는 아직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참가하는 숫자에 비해서 실제로 금의 양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금괴가 나와서 물량으로도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우리가 대단할 것도 없는 물량으로 뒤늦게 동참의 대열에 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리자」운동과 겸하여 「바루자」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정신 바루기」없이는 당면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금모으기에서 물량보다 참가 인원의 숫자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내는 금은 적을지라도 우선 현실인식을 같이하고 같이 풀어보자는 결의의 실천은 우리의 정신을 바루는 작업이다. 일단 동참하고 보면 방관자의 입장과는 가슴이 다르게 마련이고 이런 가슴들이 자꾸 불어나다 보면 금괴를 가진 이들의 마음도 감동으로든지 또는 두려움에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금괴야 들고 줄서서 내거나 TV카메라 앞에 나올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그까짓것 금 몇 돈으로…』하는 회의적인 생각만큼 파괴적인 생각도 없다. 또 뒷북치는 느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늦었어도 하는 것이다. 반드시 앞장서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개개인의 적극적이지 못하거나 회의적인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개인의 실천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회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기운을 빼는 역할을 한다.
옳은 일은 죽기로써 행하도록 배워온 원불교 교도들은 옳다고 생각하면 즉시 실천하도록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

금값이 떨어지는 것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현재의 금값이 높은 것은 달러에 대한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지 세계 금값이 높아서였던 것은 아니다. 급한 집에서 물건을 내다팔려고 서둘면 싸게 팔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이 금을 당분간 사들여서 외환 보유고를 높이거나 내수산업용으로 충당하여 수입대체 효과를 보도록 하는 일이 이미 논의되고 있다. 이런 역할을 새 정부가 잘 하도록 여론을 이끌어가는 것은 우리 몫의 일이다.

진 빚은 반드시 갚게 마련인 것이 인과의 법칙이건만 무역적자를 아무렇지 않게 알고 정신없이 먹고 쓰며 지낸 우리 모두 이제 자신부터 바루자. 그리고 한푼씩이라도 모아서 나라살림에 보태는 것은 나라살리기만이 아니고 나 자신을 살리는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임을 인식하자.

〈한지성(호적명 지현, 광운대 교수, 원불교 여성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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