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장 교무/경남교구 사무국
원불교에서 의두성리는 중요한 공부과목이다. 그것은 일원종지의 참다운 이해를 위해 이 과목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굳이 자세한 부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가재가 교도를 막론하고 대다수에게 있어 의두성리는 쉽지 않다. 그 원인은 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거나 또는 자신의 생각을 상급자에게 점검받지 못한데 있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근자에는 매년 대각개교절이 되면 성리에 대한 강설이 중앙총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여러 분들에 의해 정전의 의두요목이나 대종경의 성리품에 대한 해설서가 출간되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입문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의두성리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깨친 안목에 의한 해설보다는 일반 대중이 어떻게 이 공부에 접근하고 이 과목들을 어떻게 탐구해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이 강령이 되겠지만 공부인의 근기에 따라서는 세부적인 면에서는 좀 더 자세한 지침이 필요하다.

의두성리를 공부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아마도 이 공부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된 요인중의 하나는 이 공부가 어떤 효용성이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듯 싶다.

견성을 하면 모든 만물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나
어떤 일에도 미혹함이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서 노력을 기울일 때는 아무래도 그 일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는 견성을 하면 우주만물의 본래이치를 알게 되고 목수가 잣대와 먹줄을 얻은 것 같다고 설명하였다.

이를 선사들의 법문으로 부연해 보자. 선사들은 견성을 하면 사물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나 어떤 일에도 미혹함이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모든 만물의 이치가 훤히 밝아지는 대자유 대광명의 세계를 체험하여 사리간에 잡념으로 마음을 태우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가 나이 사십에 미혹함이 없다고 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십에 견성의 차원과 비슷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산종사가 이치에 통달하고 망념이 없어지면 이것이 곧 다시없는 낙원이라 한 것도 아마도 이런 심경을 말한 것이리라.

의두성리 공부는 수행자가 한 평생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으로 직면하는 문제는 어떤 과정으로 밟으며 이 공부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근기에 따라 관문을 투과하기 위해서 평생의 세월을 소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절차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경전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되 공부가 나보다 높은 선진자에게 물어보거나 아니면 의심 궁글리는 공부를 전문으로 하는 다른 수행단체의 가르침을 참조할 필요도 있다.

간화선을 하는 불교의 가르침은 이런 점에서 좋은 참고가 된다. 흔히 언어도단이라 하여 간혹 수행자들이 학문을 무시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오히려 선사들이 저작이 많고 고수일수록 이론이 탄탄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두나 화두에 대한 해설은 참조만 하면 되지만 공부과정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에 대한 수행 노하우는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의두성리 공부는 수행자가 한 평생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공부인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 스승들과 선인들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방향을 잘못 잡아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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