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라, 땅이 문득 풀리며 얼자 녹자 하는데,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가 꼼지락거리며 들리는 듯 하다.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운동장에 눈과 얼음이 녹아 질척거리지만 따순 햇살과 함께 움츠린 심신을 풀어놓는다. 어디 햇살 바른 곳에 앉아 늦도록 해바라기를 하며 봄을 향해 온몸을 열어두는 것은 지나친 호사일까?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무심한 사람도 입춘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도 겨울 방학을 끝내고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재잘대며 웃고 다닌다. 아이들은 겨울 방학 동안 별 간섭 없이 마음껏 자신을 발휘하고 난 후라서 많이 너그러워졌기도 하지만, 며칠 후에 있을 설날과 봄방학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흥겨운 모양이다.

방학 동안 재혼한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된 형렬이 말고는 대개가 어두운 그늘이 별로 없다. 술을 먹고 아버지와 핸드폰으로 전화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형렬이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가족간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맡겨져, 늘 그 인연에 묶여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아직까지 나는 부족한 교사이다.

다섯명의 신임교사들,
아이들은 잔뜩 호기심으로
자신을 선보이기 위해
떠들어 댄다

올해, 또 새롭게 동참할 다섯 명의 신임 교사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미혼이라 새봄과 같이 화사하다. 아이들도 새로운 인연에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선보이기 위해 떠들어댄다. 수업이 끝나면 아예 교무실에서 진을 치고 앉아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노닥거리는 아이들도 있다. 비록 시끄러워서 업무 보는데 힘이 들어도, 밝고 시끌벅적한 교무실 풍경이 싫지 않다. 아이들은 정말 옛 인연을 쉽게 잊고 새 인연을 쉽게 만난다. 요즘 청소년들의 특징일까?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대안중학교인 성지송학 중학교에서 신입생 예비학교를 가졌다. 예비학교는 어리지만 유별난 중학생들에게 색다른 경험일 수 있는 공동체 생활을 미리 체험하게 하여 순조로운 학교 생활을 예비하는 훈련 과정이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도록 예비학교를 방문하였다. 중학교 선생님들의 정성이 눈물겹다. 예비학교 학생들이 “누구세요?” 하기에, “영산성지고등학교 선생님이야” 했더니, “여기 졸업하고, 그 학교 갈 거예요” 한다. “그래, 우리 학교 오려면 잘 살아야 한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은 대문에 立春大吉을 써 붙이고, 농민들은 농사 지을 준비를 한다. 학교도 성숙한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새로 신입생을 받는다. 또한 봄방학을 맞이하며 교사들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식을 준비할 것이다. 아이들도 한 학년 진급하여 한 해를 준비하겠지. 이제 봄이 오면 이 허벅진 땅에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가꾸어 나갈 것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자.

<영산성지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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