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두성리공부를 함에 있어서 혹 유념해야 할 사항 같은 것은 없을까, 있다면 어떤 것들이 해당될까. 이는 시행착오를 피한다는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이다.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이에 관련된 것들을 알아보자.

제일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진리탐구를 위해 “나는 무슨 대가를 치를 것인가”하는 점이다.

‘Give and Take의 법칙’이 엄연한 인과의 세계에서 진리와의 합일된 체험을 원한다면 과연 무엇으로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보이지 않은 영역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자신의 근기와 제반 환경을 생각하여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다음으로 유의할 점은 ‘어떤 정해진 법도 없다(無有正法)’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상기하여 수행자는 자신의 견해로 공부에 대하여 어떤 것도 한정짓거나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은 이렇게 해야한다’, ‘어떤 방법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잘못되었다', 등의 견해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경전》에 충실하되
열린 소견으로
대승적인 판단을 하고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되
여러 선지식의 의견에
귀 귀울이는
유연한 마음가짐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천지기운이 응하기 때문에 이는 자칫 잘못하여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까하는 염려때문이다.

특히 작은 것에 너무 국집하면 마음이 작아져서 큰 진리를 담을 수 없으므로 어떤 문제든지 열린 소견으로 대승적으로 판단하고, 건강에 대한 편견은 몸을 망치게 하여 이번 생의 수행을 어렵게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정전에 충실하되 자신의 견해를 너무 고집하지 않고 여러 선지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유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한 수행자는 진실해야 한다. 깨침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행자가 우주의 본질인 법신불과의 합일된 체험을 통해 그 자리를 증득했을 때 완성되는 것이므로 수행자는 진실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리 앞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므로 진솔한 것이 좋고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격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수행자는 그 마음을 한가하고 넉넉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조급하게 하거나 초조하게 하는 일들은 정리해야 한다.

사람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 공부도 잘 되므로 공부에 방해될 만한 인연이나 일은 정리하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직업에 근실하며 재색명리를 적당히 수용하여 큰 욕심은 놓아야 한다. 무거운 것일수록 한 손으로 들지 못하고 두 손으로 드는 것이니, 마음의 작용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깨침이란 쉽다면 한없이 쉬운 것이지만 어렵기로 하면 한없이 어렵다고 한다. 불교의 경우 관문의 투과는 상근기가 삼천년의 수행 노하우를 간직한 훌륭한 스승들의 지도아래 아무런 사심없이 죽기로써 노력해도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때
공부가 잘 되므로 공부에
방해될 만한 인연이나 일은
정리하는 것이 좋다.

원불교가 후발주자로서 선발주자들인 유불선의 여러 수행방법을 뛰어 넘는 훌륭한 교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교와 천주교가 출가독신수행자를 고집하는 것은 이 공부가 간단치 않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독신이 아닌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같이 사는 짝꿍의 충고를 보약 마시듯이 삼키며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써 부족한 점을 메꾸어 나가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크게 경계한 점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워야 공부의 진도가 나간다’는 것은 도문의 정칙이다. ‘행자시절에 견성하지 못하면 견성 못한다’는 선가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하는 이야기일 듯 싶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했을때 직면하게 될 불안 때문에 아무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기에 보이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잠재의식에 기재된 전생 성공체험 자료에 근거하여 짐작으로 확고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이를 일러 상근기라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항상 초발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서원을 돌아보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욕심과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경남교구 와룡산 수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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