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간의 상태를 인정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있어야

설명절이라 교무님들이 모여 윷놀이와 영화구경을 했다. 그 덕에 부교무들도 와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요즘 생활하는데 있어서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갓 교화경험이 1년 지났는데 일상에 빠져, 아님 현실과 대충 타협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의욕이 없을까?

나 자신에게도 지난 1년간 무수히 던졌던 질문의 내용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니 ‘의욕이 없으면 안되는데’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의욕이 없을 수도 있구나! 시간 따라, 계절 따라, 경계 따라 의욕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욕이 생겨나게 하는 방법이 뭘까?

얼마전 서점에 갔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 소위 베스트셀러에 오른 수필이나 에세이를 보면,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살려내는 책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의욕이 생겨나게 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그런 책들. 그만큼 일반 사람들도 마음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지침을 통해서 마음을 살려내고 의욕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의욕을 일으켜 세우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의 상태를 잘 아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찾아보기도 하고, 교단적으로 교당적으로도 할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연구할 필요도 있다. 조직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개인적인 방법으로, 생활하는 모든 경계에 대산종사님의 법문에 대조하는 생활을 했으면 한다.

1. 네가 신심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니 영겁다생에 불퇴전할 만한 신심을 가졌느냐.

2. 네가 큰 공부를 하는 것같이 생각하니 마음을 허공과 같이 지키느냐.

3. 네가 무엇을 얻은 것같이 생각하니 너의 자가마니보주를 얻었느냐.

4. 네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같이 생각하니 생사거래를 자유할 능력이 있느냐.

5. 네가 포부를 가진 것같이 생각하니 시방일가의 살림을 벌릴 만한 역량이 있느냐.

6. 네가 깨끗한 것같이 생각하니 시방국토를 맑힐만한 청정심이 되었느냐.


이것은 곧 서원반조이며 목적반조라 하겠다.

그리고 교당에서는 서로간에 나타나는 지금의 상태를 인정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있어야 하겠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의욕이 떨어지는 그 자체를 가지고 더욱더 괴로워하고 그 속에 푹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젊은 혈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부산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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