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월송-김기천


삼산의 공덕과 인격은
참으로 순진한 옥이요,
인격· 지식· 덕행을 구비한
교단의 지보적(至寶的) 존재

삼산 종사 약력

1890년 2월 22일 전남 영광에서 부친 金多有 모친 李大有의 2남 1녀 중 둘째로 출생.
1896년 서당에 나아가 1903년 한문에 문리를 얻다.
1904년 2월 8일 같은 군 김순천를 아내로 맞이하다.
1907년 서당을 열고 훈장이 되어 한학을 탐구하며 도를 구하다.
1916년 5월 대종사를 만나 9인 제자의 일원으로 영산·변산·익산에 이르는 교단 창립의 역사에 앞장서다.
1928년 익산총부 서무부장. 대종사로부터 교단 최초로 견성 인가 받다.
1930년 익산총부 교무부장. 초입자의 입문서 <철자집> 저술
1932년 5월 6일 부산출장소(현 당리교당) 초대교무로 부임.
1933년 ‘교리송’(월보 34호), 합작 ‘불법연구회 회가’(회보 5호) 발표.
1934년 남부민 출장소, 초량 출장법회 시작하다.
‘안심곡’(회보 7호) 발표.
1935년 ‘낙도하는 가정소식’(회보 16호), ‘사은 찬송가’(회보 17호) 발표.
9월 6일 46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다.
유고(遺稿) :심월송’(회보 24호), ‘설중(雪中) 박노래’, ‘착심해탈가’.

유난히 큰 체격에 중후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삼산종사는 1890년 2월 22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 천정리에서 부친 김다유(金多有) 모친 이대유(李大有)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7세부터 서당에 나아가 13세 때 문리(文理)를 얻는다. 15세에 군서면 마읍리에 사는 김순천(金順天)과 결혼하고, 3월 8일 부친상을 당한다. 17세에 서당을 열어 3년간 훈장이 되고, 27세 때 대종사를 만나 9인 제자의 일원으로 저축조합·영산방언·법인성사·봉래제법·익산총부 건설로 이어지는 교단 창립의 역사에 앞장선다.

견성 인가 제1호

1928년 가을, 대종사 선원에서 김 기천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비몽사몽간에 여의주(如意珠)를 얻어 삼산에게 주었더니 받아먹고 즉시로 환골탈태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지로 삼산의 성리 설하는 것을 들으니 정신이 상쾌하다.

법은 사정(私情)으로 주고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저의 혜안이 열려야 그 법을 받아들이나니, 용(龍)은 여의주를 얻어야 조화가 나고 수도인은 성품을 보아서 단련할 줄 알아야 능력이 나나니라.’

일순간 선실에 정녕 가슴 뿌듯한 환희와 축하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청춘을 비롯하여 몇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회상에 견성도인 나셨다”며 춤을 추었다. 이는 앞으로 더욱 줄기차게 이어가야 할 값진 전통인 만큼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초학자의 입문서 <철자집>

삼산은 교무부장으로 있던 1930년 초입자의 교재 <철자집(綴字集)>을 저술한다. 내용은 삼학 팔조와 사은의 권학론, 신심과 분심으로 삼독심을 제거하며 자성을 떠나지 않는 수양 권면론, 참된 의심과 정성으로 일과 이치를 깨치는 연구권면론, 계문을 준수하고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충서(忠恕) 실천의 취사론, 동양 종교의 부정성과 긍정성의 평교론(平敎論), 사농공상과 영재교육의 현세론, 오랜 도덕성의 제가론(齊家論), 태극의 원리에 의한 사시순환과 팔괘를 통한 역수(曆數) 원리의 유벽론(幽僻論), 단전호흡 수련의 수련론, 불법연구회의 단합성과 공평성의 회론, 치국·평천하를 밝힌 개론으로 되어 있다.

하단출장소 초대 교무

삼산은 43세의 원숙한 견성 도인으로 1931년 5월6일 부산 하단출장소(현 당리교당) 초대 교무로 부임한다.

활달한 성격으로 부산지역에서 열렬한 순교활동을 전개한 장적조(張寂照)는 신망 있는 한 인물을 설득하여 익산총부에서 대종사 앞에 큰절을 올리고 양원국(梁元局)이란 법명을 받게 한다.

그는 귀가하여 “내가 천수경 10만 번 읽은 공덕으로 대종사를 뵙고 정법회상을 만났다”고 기뻐한다.

장적조는 그와 함께 40여 명의 교도를 모아 초가 두 채(8간)를 매입하여 개척교화의 길을 마련한다. 5월11일 첫 법회에 삼산은 사은 사요 법문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10월13일 대종사 친히 이공주·박창기와 함께 오시니 교도들은 처음 뵙는 여래의 위용과 설법에 크게 환희한다. 1934년 6월14일 삼산은 김영신(金永信)을 초대 교무로 남부민출장소를 내고, 초량에 출장 법회를 시작한다.

606행의 서사시 ‘교리송’

1935년 9월6일 새벽 3시 삼산의 열반 비보가 총부에 전해진다. 대종사 대중과 함께 대각전에서 심고를 올리고 통곡하신다.

삼산종사는 1933년 <월보>34호에 606행의 ‘교리송(敎理頌)’을 발표하여 대종사의 교법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신감으로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 연은 대종사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새 교법으로 제도하심, 2·3·4·5연은 사은 피은의 내역과 보은 및 배은의 결과, 6연은 낙원세계로 인도하는 대종사의 은혜, 7∼11연은 사요로 평등세계, 12∼17연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를 통한 제생의세(濟生醫世), 18연은 정할 때 삼학을 병진하는 정기훈련, 19·20연은 동정간에 삼학을 병진하는 상시훈련, 21·22연은 서로 도움되는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마지막 23연은 대각 성불 절로 되는 사은사요 삼학팔조 우리 교법 만세로다 라는 뿌듯한 법열로 끝맺는다.

이 법연 이 기쁨의 법흥

1935년 9월6일 새벽 3시 삼산의 열반 비보에 익산총부는 때 아닌 슬픔에 울먹인다. 대종사 삼산의 영전에 묵도 후 “가는 기천도 섭섭커니와 우리는 한 팔을 잃었다”며 통곡한다. 당시 회보 20호 삼산 추모특집에, 그 공덕과 인격은 참으로 순진한 옥(송규), 인격·지식·덕행을 구비한 교단의 지보적(至寶的) 존재(송도성), 우리에게 둘도 없는 사표(師表)이신 교단의 동량(이공주), 한 점의 하자가 없는 정금미옥(精金美玉)의 큰 도인(이운권), 대종사님께 인연을 맺어주신 영생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스승(양도신)으로 애도되고 있다.

이러한 삼산의 유고 ‘심월송’은 성가 제10부 낙도(樂道) 107장 ‘저 허공에 밝은 달은’으로 이 법연 이 기쁨의 법흥을 함께 하기에 널리 애송되고 있는 의미심장한 명곡으로 주목된다.

심월송

저 허공에 밝은 달은 다만 한낱 원체(圓體)로되
일천 강에 당하오면 일천 낱이 나타나고
나의 성품 밝은 맘도 또한 한낱 원체로되
일만 경계 당하오면 일만 낱이 나타나네.

달 사랑는 벗님네야 강 밑에 잠긴 달은
참 달이 아니오니 허공 달을 사랑하고
마음 찾는 주인공아 경계에 착된 마음
참 마음이 아니오니 본성 마음 찾아보소.

고요한 밤 홀로 앉아 이 마음을 관하올제
분별주착 딸치 말고 무심적적 들어가니

적적요요 본연한데 일각 심월 원명(圓明)하다.
여보소. 벗님네야. 이 심월을 구경하소.

원불교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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