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살의 여자 노인이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그녀는 연극배우로 60살이 넘도록 무대활동을 하였으며, 성격이 깔끔하여 빈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들어 신경질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무엇을 훔쳐가려고 한다”며 열쇠를 만들어 방마다 채우고 다니며, 심한 의부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억력 장애가 심해 집을 못찾는 경우가 있고 계산이 서툴러 상점을 혼자 갈 수 가 없다고 한다. 몸의 상태는 정상이며 의식도 명료했으나 뇌전산화단층 촬영상 뇌실질의 위축이 확인되었다.

퇴행성 치매라 일컬어지는 알츠하이머병은 최근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병이다. 65세 이상 인구의 약 4% 정도이고 매년 1%씩 증가하여 80세 경에는 5명당 한명꼴로 발병할 정도로 흔하나 실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들은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좀 더 심해졌을 때는 ‘내 아내(남편)가, 우리 어머니(아버지)가 설마 치매에?’라는 생각과 ‘못난 모습’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차일피일 미룬다. 하지만 좀더 일찍 병원을 찾는다면 진행을 늦출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긴 여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말은 1994년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은 치매를 그저 노인에게 오는 노화과정쯤으로 여기고 질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진솔한 고백으로 조기진단의 중요성과 함께 연구비 지원 등 국가적 역량의 집결이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병에 대해서 당당히 밝히고 자신의 아내를 국민들에게 부탁할 수 있는 그의 솔직하고 용감한 행동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도 질병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알리고, 현대의 치료법을 활용해서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불법을 활용하듯이 의료도 ‘나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원광대병원 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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