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총부 대각전에서 김중묵 종사의 문집 봉정식이 있었다. 열반에 든지 4년이 되어서 종사를 추모하는 후진들이 생전의 삶을 조명하고 종사가 평생 붙들고 고심했던 인과(因果)에 대한 유고(遺稿) 등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문집 봉고식에서 두 명의 교무가 추모담(追慕談)을 했다. 추모담을 한 두 교무가 겪은 일화(逸話)는 서로 달랐어도 일화에 담긴 가르침은 같았다. 종사의 추모담은 시대가 변하였다는 논리로 옛을 놓고 시대만을 좇아사는 후진들에게 자기 성찰의 계기를 갖는데 충분했다.

종사는 공사(公私)를 분명히 했다. 종사는 평생 연구한 인과에 대한 강의로 소문난 명강사여서 교당에서 강습(講習, 교리훈련) 의뢰가 줄을 이었고, 신청 후 일년이 넘어서야 순서를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종사의 예금통장에는 강의료와 시봉금 등을 모아 상당한 액수가 입금되어 있었다. 이때 사가(私家)의 한 아들이 사업을 하다 부도를 냈다. 주위에서는 아들을 도와주라 권유하였지만 “이 돈은 공중의 돈으로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중이며 교단일에 써져야 한다”며 그 권유를 한 말로 거절하고 이후 교단사업에 쾌척하였다.

종사는 불의를 보면 실천으로 바로 잡았다. 종사가 목욕을 가는 새벽시간이 시내 유흥업소에서 밤일을 마친 폭력배들의 목욕하는 시간과 겹쳤다. 그들은 목욕탕의 수도꼭지를 자기들 편의대로 여기저기 틀어놓고 사용했다. 종사는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틀어놓는 수도꼭지는 뒤따라가 바로 잠궜다. 그은 눈을 부라리며 항의를 표시했고, 같이 간 동료가 사과를 해야했다. 그러나 종사는 그 다음에도 또 사용하지 않은 수도꼭지를 잠궜다. 얼마를 지나자 이 목욕탕에는 사용하지 않은 수도꼭지를 열어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공사의 표준을 갖고 살으셨던 선진, 불의를 보면 계교하지 않고 정의로 맞서서 실천하던 그 선진은 지금 계시지 않지만 그 일생의 삶은 지금에도 있어야할 삶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