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기/익산환경운동연합 추진위원장

십여년전 유럽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다. 17세기 영국이 의회 민주주주의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지도층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솔선수범과 소박한 삶의 태도가 있었던 것을 알았다. 특히 교회의 국교화로 생산현장에서 일하지 않는 승려계급의 비만을 사전 예방한 사회 시스템의 작동이 무엇보다 소중했음을 절감하였다.
그 후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 준 것이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님들이 온몸을 던진 삼보일배수행이었다.
그동안 나는 자기 세력의 확장을 추구하거나 민족 모순을 심화시키는 향도 역을 자랑스럽게 자행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실망한 마음은 좀체 되돌려지지 않고 있었다.
IMF이후 우리사회의 일꾼 계층이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지만 늘어나는 것은 여관과 교회와 절 아니었던가?
5월 31일 오후 2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새만금사업 중단 촉구를 위한 범종교인 기도회 및 시민대회가 있어 몇몇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식전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땡볕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이 타고 땀이 흘렀다.


운동방법의
참신성과 함께
환경운동에
새로운 이정표 제시

국리민복과
미래세대를 위한
합리적인 결정 내려야


조금 있으니 네 분 수행자들과 자원동참자들로 이루어진 삼보일배 행렬이 뙤약볕 속에서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모두 다 일어서서 격려와 박수를 치는데 눈물이 나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나면 더 무섭다는 종교갈등이 오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명 평화와 이라크 및 한반도 전쟁반대 실현을 위해 두달여에 걸쳐 목숨 건 사투속에서 종교를 초월해 한 마음으로 이루어낸 네 분의 갸륵한 마음이 고마웠다.
갈기갈기 찢겨진 우리사회의 사상적 분열상을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늘 답답해하던 차에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보았다고나 할까. 네 종교단체가 사이좋게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이 그렇게 대견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외래 종교인 유·불·선 삼교를 통합하여 독창적인 선비사상을 일구어낸 저력있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삼보일배 수행단은 호소력 높은 운동방법의 참신성에서나 관료화하며 매너리즘 증세를 보이고 있는 환경운동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는 면에서 또 다른 공헌을 한 셈이다.
이제 새만금 사업 중단요구 삼보일배 수행은 운동차원을 넘어서 체제내부의 문제로 승화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중앙의 친환경적 분위기와 전북도민의 숙원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만 남은 것 같다. 산업화와 민주화 진전이후 소외된 전북도민의 낙후에 대한 한이 생각보다 깊음을 웅변한 것이 전북도지사의 삭발이다.
생태주의적 무정부주의자나 개발 지상주의자들의 자제를 호소하며 지고지선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개발의 중요성을 되새기면서 국리민복과 미래세대를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 새만금 신구상 기획단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끝으로 종교인의 존재이유와 통일의지만 있으면 종교통합도, 사상결합도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내외에 보여준 삼보일배 수행자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위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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