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짓는 죄가 더 나쁘냐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나쁘냐’하고 물으면 보통 사람들은 거의가 다 전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죄의 근원이 무명(無明)임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르고 짓는 사람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줄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죄업을 짓는 악순환으로 악도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 교단의 큰 걱정이 되고 있는 핵폐기장 설치 문제 때문에 홍농 원자력발전소 앞 시위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주민들이 “원불교 물러가라”며 우리를 향하여 시위를 하였다. 핵폐기장을 유치한 뒤 보상을 받고 떠나면 된다는 눈 앞의 이익을 위하여 무엇이 최선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하여 좋은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핵의 폐해를 지금만큼이라도 알았더라면 원자력발전소가 건립되기 전부터 막았어야 했을 일이었다. 우리가 너무 무사안일하고 무지한 탓에 이렇게 지탄을 받나 싶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질 때마다 환경을 걱정하는 뜻있는 이들이 반대하는 것을 보며 ‘뭐하러 저렇게 극성들을 부리나’하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모든 방면에서 다 잘 알수는 없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세상을 선도하려 하는가를 알면서 사회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며 살았어야 했다. 그러나 각자의 주어진 자그마한 틀 속에 갇혀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눈앞에 이렇게 큰 일을 당하고 보니 이미 때가 늦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핵의 폐해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가, 또는 그 밖의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도 알고있는 만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설득하며 무지를 깨우쳐 주는 것이 바로 교화사업이 아니겠는가.
정산종사탄생백주년 사업을 마치고 군종 문제, 방송국 문제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어져 긴장이 풀리고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려 할 무렵 다시 이러한 큰 경계가 출·재가 전 교도들에게 닥친 것은 ‘밖으로 사회로 세계로 미래로’관심을 돌려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일깨워준 계기가 아닌가 한다.
지금은 편리하고, 안전할 것 같은 핵에너지 정책을 차차 전환하여 앞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천지에 크게 배은하는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도록 온 힘을 모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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