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딛고 홍콩교당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떻게 교화를 해야 할 것인다’가 큰 과제였다.

5월 22일 석존성탄절행사를 시작으로, 몇 명이라도 한자리에 앉아서 법회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법회를 매주 토요일 11시로 정했다. 지금은 일요일과 금요일 정식법회를, 화요일 11시에는 교리법회 시간을 갖고 있다. 정양일 교도를 제외하고는 여기에서 만난 인연들로써,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제는 조금 안정이 되어가는 것 같다.

첫 해를 보내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그러나 대산종사님의 ‘교화의 도’ 법문과 예타원 전이창 종사님의 ‘한때 성황을 이루는 것도 좋으나 한 사람이라도 혈심을 심어주는 것이 깊은 교화며, 안으로 적공하고 밖으로 신명을 바쳐 감동을 주고 덕화를 미치게 하는 교화가 더 높고 원만할 것이다’란 법문을 교화의 지침으로 삼았다.

가끔씩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길지라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마음에 힘이 생기고,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정리를 해 가다보니 조금씩 생활이 안정을 얻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교화는 불공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고, 풀 한 포기까지도 교화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지난 대각개교절에 우리 교당에서는 북한식량보내기운동으로 보은하기로 했다. 비 교도에게도 권선을 하기로 했는데 남자 교도 한 분은 모금을 해 봐야겠다고 서원을 세웠단다.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안 해본 일이라 걱정이 되어 집에서 아들에게 먼저 절을 하며 연습을 하니 3일만에 아들이 희사를 하더란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공부에 재미를 붙이신 한 교도님은 자연스럽게 ‘성불제중 합시다’란 인사로 공부심을 삼기도 한다.

우리 교당의 큰 자랑이라면 전 교도가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고, 법회에 꼭 출석하며, 일 속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교당 분위기가 안정이 되고 편안한 교당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교당을 옮기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돈은 적고 교당은 좀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순리로써 일을 한다고 하지만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년 2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새 교당을 사게 되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우리에게 적당한 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도들도 모두 안심을 얻고 교화의 희망도 많이 갖게 되며 우리 교당이 해야할 의무와 책임인 동남아의 관문이요 중국 대륙의 전 초지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아봉공의 참 주인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교당이 되어지기를 빌며 새 교당을 수리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새해 봄에는 봉불식을 하게 될 것 같다.

<홍콩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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