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졌다. 겨울의 초입이다. 그러나 이곳 수련원 옆 등산로에는 기온의 하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왜 낙엽이 떨어져 가는 산을 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바쁜 세상사를 잊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여러 가지 일들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위함일 것이다. 겨울의 등산은 여름철 짙푸른 녹음으로 감추어진 산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니까 말이다.

요즘 이곳은 옆에 있는 계곡의 사방공사가 끝이 나서 주변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그래서 이제 수련원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아울러 이전보다는 계곡의 물소리를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공사는 큰비가 와서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계곡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낙차를 이루는 보를 만들며 석축을 계단식으로 운치 있게 쌓는 일이 주된 내용이었다.

공사를 지켜보며 인상깊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기술자 두 사람이 계곡에 널려있는 여러 돌들의 모습을 한눈에 보고 각각의 돌에 대한 쓰임새를 적절하게 판단하여 짜임새 있게 돌들을 쌓아 가는 광경이었다. 그 안목이란 보통 이상의 것이어서 žI대학žJ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연상케 했다.

두 달여 동안 계속된 사방공사에서 일에 대한 견문을 넓히며 새삼 수도인도 일에 밝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에 밝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일은 항상 현실에서 부딪치는 것이지만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하여 그것을 운영해 가며 시비이해를 따지는 것이기에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사판의 고수들에 대해 존경심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사판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판에도 밝아야 한다. 이판에 대한 안목이 열려야 원래 텅빈자리에서 판국전체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공정한 시비이해의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극락선원의 조실이었던 경봉스님은 조사선 도리를 깨친 선지식이었지만 통도사 주지를 두 번이나 지내기도 했다. 이는 아마도 주위에서 절살림을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과 이치에 두루 밝기란 쉽지 않다. 가끔은 이판은 밝을지 몰라도 사판에는 컴컴하다는 지적을 받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는 잘하는 이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일이란 대소유무로 건설되어 시비이해로 운전해 가는 것인 바, 그 대소유무에 대한 안목에 미흡함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치란 혼자서 연구할 수 있다지만 일이란 경험속에서 지혜를 밝혀가는 면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무애 사무애하는 큰 도인이 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따라서 이판과 아울러 사판을 통해서도 안목을 키워나가는 노력도 병행해야 그 상승작용으로 좀 더 나은 안목을 가지게 될 것 같다.

동양철학의 석학이셨던 고 배종호 교수는 안에서 풍수서를 보면 그 구절에 부합하는 산의 형상이 떠오르고 밖에 나가 산을 보면 그 형상에 부합하는 풍수서의 한 대목이 연상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풍수에서는 법안이 열린 것이라고 칭한다는데 이는 그 분이 이론 연마와 함께 부단히 현장답사를 하여 얻은 경지라고 생각된다.

지금 한국사회는 동북아의 물류중심국가를 꿈꾸며 국가이미지 향상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되도록이면 이번 대선에서는 이판과 사판에 밝은 안목있는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런 지도자에 대한 욕구는 국가적으로나 전세계적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교법에 있는 바, 우리 모두는 일과 이치에 밝은 안목있는 공부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경남교구 와룡산 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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