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교무 칼럼

▲ 전치균 교무ㆍ경기인천교구사무국
서울을 향하는 1번 국도 중 수원과 의왕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 지지대 고개이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에 행사할 때마다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 고개를 오르면 멀리 화산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가 보이는데도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아주 더디게 느껴져서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왜 이렇게 더딘가?”하고 한탄을 하였다고 하며,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환궁을 할 때는 이 고개의 마루턱에 어가를 멈추어 서게 하고 뒤돌아서서 오랫동안 부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이 고개를 ‘느리게 느리게 넘어가는 고개’ 또는 ‘더디게 더디게 넘어가는 고개’ 라는 뜻의 한자어를 써서 지지대(遲遲臺)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행차가 그 아무리 더디었던들 삼보일배(三步一拜) 수행길보다 더디었을까?
부친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 만생령을 위해 흘린 눈물만큼 많았을까?
병점에서 수원을 거쳐 과천에 이르는 몇 일 동안 삼보일배팀과 동행을 하면서 나에게 던져진 삼보일배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수원의 가장 큰 사거리를 지나며 나도 모르게 솟아지는 눈물을 닦으면서 ‘새만금을 개발하면 고향인 전라북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땀으로 얼룩진 네 분의 옷가지를 빨면서 ‘서해안 시대가 열리면 국운이 융창한다고 했다는데 그럼 우리 교단에 긍정적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라는 생각 - 이런 나의 생각은 네 분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에 갈등하고 있었다.
아는 만큼 실행하고 실행한 만큼 깨닫겠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무지인인 나로서는 새만금에 살고 있는 뭇생명보다 개척사업의 부당성에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지고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km 삼보일배를 하고 있는 한 선진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21일 원불교인의 날을 통해 누구보다 앞장서 삼보일배를 하였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도 소중하였지만 낮은 곳으로 향하는 절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떨어진 앞서간 사람들의 땀을 보면서 내 자신 탐욕과 이기(利己)를 벗어나 생명의 존엄성과 후손들에게 빌려 쓰고 있는 환경 보존의 당위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정당한 일에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의 정도와 일의 성질에 따라서 조만은 있을지언정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뭇생명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등에 지고 305km 만행을 수행하고 있는 김경일 교무님. 우리는 이 실천하는 양심의 고행이 단지 사회를 향한 하나의 이벤트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끝없는 참회와 반성으로 환경을 살리기 위한 실천으로 거듭날 때 삼보일배의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지금도 진행을 맡고 있는 리더의 한 마디가 귀에 울린다. “온 세상에 생명 평화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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