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교무칼럼

▲ 정봉원 교무/원광대학교당
이젠 4월 중순. 연한 초록이 모여 싯푸른 초여름 숲을 만들어내는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촌에서는 싸움이 한창이다. 세계 어느 곳이건 크고 작은 싸움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그렇지 않는가. 내 마음까지도 말이다. 순간 순간의 정념과 사념의 싸움.
나라와 나라의 싸움, 당과 당의 싸움, 종교간의 싸움, 내 회사와 다른 회사와의 싸움, 가정에서 부부간의 싸움. 그리고 총부와 지역 교당과의 갈등, 교무와 부교무와의 갈등 등.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가 나의 것, 내 권익을 위해서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마음이 유하고,
도에 순응해야,
지고도 이길수 있다

이러저러한 싸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싸움은 큰 싸움이 되기 전에 잘게 나누어 미리미리 작은 싸움을 하는 것이 파국을 면하는 가장 큰 방법이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잘 지는 것이다.
강물이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결국 바다로 가듯 쉽게 지면서도 어느덧 이겨버리는 것이야말로 제갈량의 병법보다 더 기막힌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진다는 것은 이기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마음이 유해야 하고 도에 순응해야 한다. 더구나 지면서도 이길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우에 어긋나지 않고 떳떳해야 한다.
폭력범은 감옥에 가고, 몸에 난 상처는 치료를 하면 치유가 된다. 하지만 같이 사는 동지들의 갈등과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쉬이 가셔지지 않는다.
교화의 가장 어려운 점은 서로간의 멍든 마음, 멍든 관계를 현명하게 치유하는 일이다. 어떤 어른님은 “교도 교화와 교무와의 갈등문제에 직면하면 오히려 교화를 포기하라”하셨다. 교당 교무님들이 하나로 연해지지 않고서야 교화는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한 말이다. 교도들에게 하나되는 것을 가르치기 이전에 교당에서 한 목소리, 한 마음이 나와져야 한다. 그러하면 자연 그 교당은 하나가 되어질 것이기에. 가장 현명한 것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 먼저 껴안아버리는 것이다. 마음공부하는 도량이 바로 교당인 것을.
여우와 어린왕자의 길들이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서로의 것들에 대한 약간의 양보와 넉넉한 사랑, 그것이 있으면 여우처럼 어린왕자의 머리 빛깔인 노오란 밀밭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한치도 양보없는 경쟁보다는 동포보은의 도인 자리이타법을 써보자. 교역자의 권위를 내세워, 윗사람의 권위를 내세워 해결할 일이 아니다. 너와 나, 서로가 공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여래로 가까워지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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