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노인복지센터 천성준 교무

“잊혀져 가는, 아니 사회가 잊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도적·사회복지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성직자로서 노력해 갈 것입니다.”
일명 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교화의 장, 익산시 왕궁노인복지센터에 근무하는 천성준 교무의 다짐이다.

한센병 환우 곁에서
한센병은 세계적으로 90여개국에 1천만에서 1천5백만명의 환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는 88곳의 정착촌에 약 1만8천명의 환우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발병하지 않는 소멸성 질환이다. 익산시 왕궁면 한센병 환우 정착촌은 소록도의 8백여명보다 많은 9백여명으로 국내 최대규모이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한센병 환우들이 자활의 방편으로 축산업을 하였으나 지금은 노령과 병 후유증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여 어렵게 살고 있다. 널리 알려진 소록도를 제외하고 이들 정착촌은 사회와 유대가 적고, 사회복지 서비스 접근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왕궁의 무연고 교화 개척지에 원기84년(1999) 천 교무가 부임하였다. 이듬해부터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산하 비인가 왕궁복지회관으로 운영하다가 올해부터 국고의 지원을 받는 왕궁노인복지센터로 29일 개소한다.
천 교무는 “전체 면민중 10%가 한센병 노인들이어서 재가노인 복지서비스에 역점을 두고, 인가를 받은 만큼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통합을 위해서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그들의 권익을 되찾아야 한다는게 천 교무의 생각이다.

“계란으로 바위 깰 것”
“한센병 환우들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과에서 취급을 하는데 이제는 보건계열이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천 교무는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인권·의료·복지·환경 등 네가지 테마를 가지고 종합접근을 하려 한다. 지금까지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운동가나 기관들은 대부분 어느 하나의 주제만으로 접근을 해왔던게 사실이다.
천 교무는 이러한 종합 가치실현을 위해 지난해 7월 서울에서 한센병 관련 각계 전문가를 모아 한센정책연구소 설립을 발의하고, 11월 한센정책연구소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다. 틈만나면 서울을 찾아 관계 요로에 한센병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대통령에게도 탄원서를 제출하곤 한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는 것을 잘 알지만 언젠가 그 단단한 바위가 깨질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성나자로 마을의 후원
지난 15일엔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한센병 편견 극복을 위한 시민 네트워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했을 때, 나라별로 다른 정책들이 서로 모델이 되어 상승효과를 이룰 것이란 믿음과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세계평화운동의 하나란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엔 성나자로 마을 원장 김화태 신부가 방문하여 종교적 동질성을 확인하며 1천만원의 헌공금을 놓고 갔단다.
김 신부는 “20년 넘게 성나자로 마을을 찾아주신 박청수 교무님에 대한 빚”이라고 말했지만 교단적 조력이 없던 천 교무에게는 법신불의 하감과 응감이었다. 이에 힘입었을까? 천 교무는 왕궁 한센환우 정착촌의 교회들을 돌아다니며 종교적 화해와 한센병 환우들의 대외적 인권을 위한 공동사업을 제안한 상태이다.
앞으로 국가로부터 소외받는 희귀질병 5천여종에 의해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 활동의 폭을 넓혀 갈 예정이다.

오토바이 수리공의 꿈
천 교무의 이같은 삶은 그의 인생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강원도 홍천의 오토바이 수리공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쉬는 휴가일에는 교당을 찾아 일일출가를 했고, 오토바이를 수리하며 틈틈이 읽었던 교전의 내용이 신념화되어 출가를 결심했다. 힘겹게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지망했고, 방학이면 철거촌이나 꽃동네·기지촌·소록도 등 소외계층을 위한 만행을 하며 성직자로서의 꿈을 꾸었다.
“어려운 걸 도와주는게 곧 교화다. 힘겹겠지만 몇 개 교당의 역할을 할 것이다. 자신을 잊고 살아라.”
5년전 왕궁으로 들어갈 무렵 고 김지현 종사의 말씀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어른의 자비와 젊은이의 열정이 조합되어 보은행이 나투어진다는 실례이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교화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익산지역은 모든 원불교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모태부터 열반까지 셋팅된 도시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구조의 교화 모델이 필요한 때입니다.”
천성준 교무가 꿈꾸는 익산지역 교화 모델은 왕궁노인복지센터에서 영글 것 같다. 나이든 왕궁지역 한센병 환우들의 젊은 조력자는 오늘도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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