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이선우 교무

선산 이선우 원로교무는 원기39년 겨울, 정산종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하서를 받았다. ‘和而不? ?爲中正(화이불류 호위중정)’. ‘화하되 거기에 흐르지 말고 과불급 없이 널리 중정을 행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받든 때는 이 원로교무가 6.25직후 영산에서 2차 방언을 하던때였다. 정산종사는 “난리가 지난뒤라 영산이 어수선 할 것이다. 고생이 되더라도 순공심으로 있으면 괜찮을 것이니 천심으로 살아봐라”하시며 이 원로교무를 영산으로 보냈다.
이 원로교무는 그곳에서 정산종사의 말씀을 받들어 쑥대밭이 되버린 성지 재건의 기초를 다졌다. 정산종사는 편지를 통해 어렵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까다로운 사람이 있으면 화하되 주체를 가지도록 했으며, 일을 할 때 중정으로 해야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때때로 영산 재방언 중간 보고를 드릴겸 조실에 들리면 정산종사는 “손잡아라”하시고 “그 상황을 이야기 해보라”하시면서 좋은 소식은 그렇게 좋아하시며 “순공심은 그런 것이다. 혈심으로 하면 다 풀린다”고 하시며 격려해주셨다.
이 원로교무가 정산종사를 처음 뵌 것은 팔산 김광선 대봉도의 종제식에서 였다.
“완전히 무위 그대로 합한 어른이셨습니다. 인위적인 가식없이 그대로 천진불이셨지요. 달덩이 처럼 환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라고 그때를 회고했다.
원기25년 총부 산업부로 오게된 이 원로교무는 원기27년부터 정산종사를 모시게 됐다. 산업부 복숭아 밭에서 일을 하게 된 이 원로교무는 복숭아를 판매하기도 하고 거두어 들이는 일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복숭아를 사면서 말을 거슬리게 하자 이 원로교무는 “당신이 나를 언제 봤는데 말을 그렇게 하냐”고 하니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복숭아도 사지않고 그냥 가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 저녁 정산종사는 이 원로교무를 불러놓고 한참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더니 “예를 아느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니 “대우 받는 법을 아느냐. 대우를 받으려면 예를 알아야 한다. 함부로 말을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셨다.
이어 “예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공경하는 마음, 둘째 겸양하는 마음, 셋째 계교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이 무엇이라 하든지 대우받는 도를 알고 행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 원로교무는 이날의 법문을 가슴깊이 새기고 일생동안 공부의 표준을 삼았다.
유일학림 1기생으로 입학한 이 원로교무. 정산종사는 1기생들을 못자리판 가꾸듯이 정성을 쏟아 가르치셨다. 학림생들은 의심나는 일 하나만 있어도 조실로 쫓아가 여쭈었으며, 조실앞 벚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서도 세계 정세나 학림생들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다.
어느날 정산종사는 이 원로교무에게 “선우 너는 마음을 키우는 방법으로 위인전을 많이 읽어라”하시며 “유교에서는 삼천독을 한다. 삼천독, 삼만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한번 읽어도 깨달음이 있어야지 읽기만 하지말고 뜻을 찾아 읽으라”는 자상한 당부를 해주셨다.
이 원로교무는 산업부, 수계농원, 이흥과원, 영산, 보화당, 원광대 원예학과 참사, 중앙훈련원, 영모원부원장, 원림농원에 근무하며 일생을 교단 산업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원기77년 퇴임후 현재 중앙남자원로수양원에서 성리생활로 일관하며 여여한 심락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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