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이들의 훈훈한 공동체

나와 너, 서로 돕는 보금자리

▲ 영산성지순례에 나선 자선원 가족들이 법인광장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좌). 오성수 원장(뒷줄 중앙)과 임직원 일동(우)

성지순례를 겸한 가을 나들이

갑갑한 마음을 풀기 위해 야외로 바람을 쐬러 나가는 즐거운 소풍! 누구나 설레고 들뜬 기분이다. 타인의 도움이 없이 외출하기가 어려운 가족들은 나들이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전8시20분 대형관광버스 3대가 자선원 입구를 돌아 들어서자 생활인들은 환호부터 외쳤다. 비록 현장학습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짜여진 일정이지만 이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지난 10월31일, 자선원 가족들이 영산성지 순례를 겸한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이제는 원불교 성지순례도 일상 행사로 여기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나태한 습관을 버리고 법신불신앙 아래 하나하나 훈련으로 젖어온 변화된 모습들이다. 직원들은 이날을 위해 잠바와 운동화, 모자를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입혀보고 사이즈를 맞추며 일주일 내내 소풍 준비에 매달렸다.

버스가 익산시내를 벗어나 무사히 다녀오겠다는 기원독경이 끝나자마자 가족들의 노래자랑이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가족들마다 즐겨 부르는 흘러간 노래와 최신 가요 등 자신의 지정곡이 다 있을 정도로 상대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날 자원봉사자로 참석한 장삼례 교도(마동교당)는 “평상시에 말하는 대화는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노래만큼은 정확하게 부른다”고 전한다.

대각비와 영모전, 영산원불교대학교를 차례로 순례한 가족들은 옥녀봉 아래 법인기도 광장에서 한바탕 놀이 마당을 가졌다. 청백으로 두 팀을 나눠 풍선터뜨리기 깡통두드리기 줄다리기게임을 즐기고 장기자랑과 보물을 찾으며 푸짐한 선물도 받았다. 특히 한사람이 눈을 가린 동료에게 목탁을 치며 길을 인도하며 되돌아오는 게임은 나와 너, 서로가 의지하고 도와주면서 생활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자선원,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곳

이날 차안에서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꿈꾸며, 원외에서 직업재활을 하고 있는 송우정(가명)씨를 만났다. 잦은 술로 인해 이혼까지 한 그는 자포자기 생활로 정신까지 피폐해져 부랑인 시설을 전전해 오다 현재 자선원에서 숙식하며 노동을 하고 있다. 그는 “자선원 분위기는 타 시설에 비해 자유롭고 가족적이며 늘 웃음이 넘쳐난다”며 “이곳 생활을 제2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가족과의 재결합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재활 의지를 보였다.

자선원의 시설은 이미 오래 전에 개방했다. 정문은 항상 열려 있는 상태이다. 가족들은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오고, 간다고 하면 다시 붙잡지 않는다.

변하고 있는 부랑인시설

특히 최근 인권문제가 부각되면서 개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주고 있다. 간혹 길거리에서 술이 취해 쓰러져 있는 이를 경찰이 시설로 인도할 경우가 있다. 노인·장애인·아동은 법규가 있어 시행하는 반면에 부랑인시설은 운영규칙만 있어 행정처리가 원만하지 않을 때가 많아 애로사항이 있다. 그러나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실업자도 증가하고, 이혼 등으로 가정환경이 파괴되면서 스스로 찾아오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오성수 원장은 “이제는 무조건 수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실패를 하더라도 원외 직업재활훈련을 통해 스스로 생활하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며 “정신질환이나 지체장애 등 복합장애를 가진 가족들은 공동생활이라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 정도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하루속히 정착되길 바랬다.

자선원의 대표적인 원내재활사업은 상자 접기 작업. 처음 상자 접기는 일에 취미를 갖도록 하는 재활프로그램 중 일부분이었다. 그후 상자도 잘 접을 뿐 아니라 수거도 편하다는 소문이 사업체로 나돌면서 10여개 회사로 늘어났다. 수익금 중 상자 접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에 함께 한 가족들에게 똑같이 분배되어 각자 개인통장으로 적립된다.

또한 생활인들이 영농은 물론 축산 원예 목욕 이발 등을 도맡아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특히 금년 초부터는 원불교신문을 접어서 발송하는 업무까지 서너 시간이면 처리할 정도로 능숙하고 완벽하다. 단지 직원들은 이들이 일거리를 배우고 익히는데 조정하고 잘 할 수 있도록 윤활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히려 봉사의 손길을

이제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과 지역의 어려운 곳을 찾아 도우며 새 삶을 살고 싶어하는 가족들. 원내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지역사회로 봉사의 손길을 돌리고 있다.

가족들은 한 달에 한번 자선원 앞길에서부터 계룡마을 구간과 중앙총부와 황등을 잇는 대로변에 나가 청소를 한다. 먼동이 트기도 전에 생활인들은 잡초제거와 휴지 줍기, 비로 쓸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하나가 되고자 한다. 매년 중추절이 다가오면 익산시 공원묘지의 행려자 묘지를 찾아 벌초와 청소를 해주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보은행의 하나로 주민들에게 다가선다. 또한 여가시간에 책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된 도서관은 주민들의 회의 장소를 위해 개방해 주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삼동회에서 부랑인 선도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자선원은 이제 20여년이 다 됐다. 그동안 숙소는 물론 식당, 목욕탕, 물리치료실, 도서실, 프로그램실, 강당을 겸한 법당까지 신축하면서 가족들이 편안히 요양하고 훈련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이만도 덕무는 “처음 세워진 본관건물은 보조금이 나올 때마다 증축을 여러 번 한 결과 노후되고 부실한 상태이다”며 “이 건물은 보수보다는 신축하여 명실공히 자선원의 중심 건물이 되도록 하는 일이 과제"라고 말했다.

따뜻한 마음과 손길로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가는 훈훈한 공동체인 이리자선원. 올 겨울 추위에도 외롭지 않도록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후원의 정성을 보냅시다.

전화(063)855-7672 후원계좌번호 외환은행 395-22-00187-6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이리자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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