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신 교무/만덕산훈련원장
삼동원에서 제주 국제훈련원으로 이동할 때 예타원 전이창 종사님께서 세수비누 두 장을 챙겨 주시더니 “세수비누 한 장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하시며 도로 가져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훈련원에 와보니 당장에 그 세수비누 한 장이 아쉬었다. 그래서 “그 세수비누 주실 일이지, 당장 빨래비누 한 장도 없네요. 어떻게 산대요?”라고 하니 그 어른 대답이 “백상원 교무는 집도 땅도 없는 소련에서 사는데 너는 집있고 땅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하시고는 전화를 끊어셨다. 그때 나는 정신이 바싹 들었다.

그래서 왕궁에 계시는 대산종사를 뵈니 “너를 보내놓고 내가 안심을 했다. 내가 아파서 갈 수 도 없고, 내가 딸 하나는 잘 둔 것 같다.”며 격려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무것도 없고 너무 막막합니다.”하니 “기도하며 살아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그 말씀을 받들고 다시 제주도로 들어갔다.

일단 훈련은 해야 되겠기에 이곳저곳 수리를 위해 견적을 빼니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일하는 사람에게 “한푼도 깍지 않고 돈 생기면 줄테니 일단 일을 해주세요”했더니 흔쾌히 대답해서 일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 부산에서 한 교도님이 기도를 하러 오셨다.

그 교도님이 기도를 하고 뒤돌아서는데 “아이구! 이럴수가! 저 바다!”하는 말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었더니 그 분 하는 말이 “바로 저 바다야! 제주국제훈련원 법당에서 태평양 바다가 한 눈에 보였는데 바로 저 바다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인 즉 그 교도님이 꿈에 제주국제훈련원에서 나와 기도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꿈 언제 꿨어요”하니 “아마 작년 11월 정도일 거예요”라고 했다.

그런데 내 인사가 결정된것도 11월 이었으니 그 교도님의 꿈이 더욱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40여년 출가생활동안 진리의 뜻대로 스승님의 뜻대로 종명과 공명을 생명처럼 알고 수화라도 불피하는 정신으로 살아왔다.

빨래비누 한 장 없는 제주국제훈련원에서 1천일 기도를 하고 훈련원앞의 땅 1천3백평을 사게 되었고, 또 한번 1천일 기도를 한 후에는 훈련관 오른쪽 1천3백평을 사게 되었다. 그 땅을 사고 대산종사를 뵈었는데 “그 땅 샀다면서야! 빚을 졌거나 말았거나 큰 일은 끝났다”하시며 너무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들어가는 입구의 국가땅을 전부 재단 법인 원불교로 이전 등기 시키고 국제 훈련을 떠나왔다. 6년간의 생활이 진리의 가호와 스승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대산종사께서 “나는 교단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공명을 받들었다. 그러나 공명보다 종명이 더 중요하다. 사무여한 정신으로 살면 못이룰것이 없다"고 하셨던 말씀을 나는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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