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종법사의 발길 머문 남원 일대

▲ 송림사이에 자리한 중앙수도원 운봉분원의 을타정사
▲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
▲ 몽심재 앞마당 바위에 새겨진 주일암 글씨
▲ 정산종사가 대종경을 편수한 백우암
▲ 지리산 구룡폭포
지리산 전라도 자락인 남원 일대는 대종사를 비롯해 역대 종법사의 발길이 머물고, 상산 박장식 종사를 비롯해 박씨 일가가 전무출신의 한 맥을 이룬 곳이다. 대종사는 광한루원에 자리한 춘향사당을 직접 참배하고 그 절개를 기렸다. 정산종사는 구룡폭포에 올라 풍류제중(風?濟衆)의 일감을 얻었으며, 좌산종법사는 중앙수도원운봉분원의 기초를 닦았다.
그 이면엔 상산 박장식 종사의 귀의가 숨어있고, 수지 홈실에선 40여명의 걸출한 출가자가 배출되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가을, 운봉수도원에 둥지를 틀고 역대 성현들의 발길을 좇다보면 어느새 다북한 훈더움이 가슴 가득해 온다.

광한루원 열녀춘향사

남원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찾을 곳이 광한루원이다.
원기25년(1940) 3월에 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남원지부장이었던 박장식 종사의 안내를 받아 남원교당 신축봉불식에 함께간 유허일, 송도성과 광한루원을 찾아 춘향사당을 참배하였다. 대종사는 춘향사당에 참배를 하시며 “내가 그에게 예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절개에 대하여 예를 하는 것이다”고 했다.
대종사는 부산에서 ‘춘향전’ 연극을 두 번이나 보셨고 총부 공회당에서 작업하는 학인들에게 축음기를 틀어놓고 ‘춘향전’에서 절개를 배우라 하셨다.
현재 광한루에는 원기33년(1948) 10월 정산종사의 부친인 구산 송벽조 선진이 지은 시가 박윤식의 글로 새겨져 목판화되어 걸려 있으나 보존관계로 광한루에 오를 수는 없다.
광한루원을 찾는 사람들은 ‘열녀춘향사’란 편액이 걸린 사당을 찾아 유심히 춘향의 초상화를 살핀다.
그들이 찾는 것은 춘향의 절개일까 아니면 외모일까?남원을 떠나기 전 붉은 단풍 목도리를 두른 노암동의 금암봉 계단을 오르는 것도 한층 운치를 더해준다. 일본 신사터였던 금암봉 마루의 건물은 원기33년(1948) 정산종사를 모시고 남원교당이 신축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원시립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위구경 힘든 수지 홈실

남원에서 지방도 60번을 타고 한참 벼를 수확하는 들판을 20여분 달리면 상산 박장식 종사의 출가를 기원으로 40여명의 전무출신을 배출한 수지면 홈실마을에 당도한다.
국도변 고요한 이 마을은 정산종사를 비롯해 역대 종법사가 다녀간 교단의 유서가 서린 터전이다.홈실은 조용헌 교수(원광대 동양학대학원)의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죽산 박씨의 ‘남원 몽심재(?心齋)’가 자리하고 있다.
몽심재는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홈실(虎音室)에 있는 연당 박동식의 고택으로, 예로부터 대접이 후해 지리산을 넘어 한양을 오가던 조선 선비들의 아지트였다.
풍수로 본다면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튼한 ‘청룡장안(靑龍長案)’의 형국으로 ‘도인(道人)’이 많이 배출된다고 한다. ‘호음실에서는 사위 구경하기 힘들다’는 말은 여자교무가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 한다.
박장식 종사는 몽심재 3대주인 만석꾼 박해창의 차남이며, ‘한국의 마더 테레사’ 박청수 교무를 비롯해 박제권 전 일본교구장·박제현 전 교육부장·박지홍 전 강원교구장·박성석 전 광주전남교구장·박진흥 중앙총부예감·박원석 군산지구장·박명제 영광교구장·박영륜 인천지구장 등 전현직 교단의 걸출한 인물들이 모두 이곳 홈실 죽산 박씨들이다.박장식 종사는 몽심재를 ‘우리의 꿈(?)은 마음(心)공부 잘하는 것(齋)’이란 신앙적 해석을 한다.
몽심재 앞마당엔 큰 바위가 있는데 그곳엔 주일암(主一岩)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지난해 박장식 종사는 좌산종법사를 모신 자리에서 ‘일원대도가 주인’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곁들여 일원대도 문하의 교도들에게 의미를 던진바 있다.
홈실을 떠나기 전 죽산박씨 종가의 충현공 사당도 둘러 볼만하다.

정감어린 백우암

남원에서 운봉으로 향하는 길, 장수와의 갈림길에서 장수쪽으로 5분여를 달리면 지리산 물줄기를 옆에 낀 산동교당이 나온다.
정산종사 정양 하며 대종경을 편수하고 국운에 관한 법문도 몇 편이 나온 곳이다.정산종사는 이곳에서 무궁화와 태극기를 보며 국운을 예감하셨고, 효천뇌우일성후 만호천문차제개(曉?雷雨一聲後 萬戶千門次第開 ; 새벽 하늘 우뢰 비 한 소리 뒤에, 모든 집 모든 문이 차례로 열리리라)란 법문도 하셨다.
길 옆 주렁주렁 달린 감 숲 사이로 들어서면 정산종사 계시던 백우암이 야트막한 언덕에 아담히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너른 앞터에 새 건물이 교당으로 쓰인다. 백우암의 거창하지 않은 기둥들이 꼭 정산종사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처마끝의 물줄기 닿는 곳 마다 옹기를 받쳐놓고, ‘원불교산동교당’이란 한글체와 ‘청풍월상시만상자연명, 사은지본원여래지불성…’등의 한문 편액들이 어찌 그리도 정감있는지.
목백일홍 옆 솔숲에서 백우암을 지켜보노라면 금방이라도 낡은 문 열리며 정산종사 빙긋이 웃으실듯 하다.

수양, 그리고 풍류가경

운봉중학교 뒷편에 자리한 중앙수도원 운봉분원은 일제말 남원일대 한 부호의 사정(私庭)이었다.
3만평의 드넓은 대지에 축산 조경을 하고 동물을 방사해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일타원 박사시화는 그 부호의 부인인 을타원 이복전을 교화해 노우성·조성남등과 운봉교당을 설립했고, 이 터는 운봉교당의 3번째 터가 된다.
대산종사도 이곳에서 교리강습을 지도했고, 좌산종법사도 교무로 6년을 근무했다.
지금은 퇴임 원로교무들의 수도원이 자리하였으되 고즈넉한 풍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을타원 이복전을 기리는 한옥 을타정사가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문의 063-634-1992) 황토방에서 잠을 청하고 이른 아침 좌선을 마친 후 물안개 피어오르는 전나무 숲을 거니노라면 마치 도솔천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지리산 국립공원의 남원쪽 입구인 육모정은 춘향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들러 명상에 잠긴 후 노고단 쪽으로 1시간 가량 오르다 보면 구룡폭포가 나온다.
이곳은 박장식 종사가 정산종사, 그리고 좌산종법사를 모시고 격무중 잠시 한가한 심경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그다지 험하지 않아 아이들도 함께 등산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