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반핵운동

요즘 전북 부안은 핵폐기장 설치의 연내 주민투표 문제를 놓고 부안대책위와 정부간에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중이다. 부안대책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부안교당 김인경 교무는 지난 7월 14일 김종규 군수의 유치신청 이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매일 열리는 대책위 회의와 촛불집회, 구속자와 부상자를 위한 행보, 게다가 요즘은 정부측과의 협상에 이르기까지…

부안의 사실적 스케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혀져가는 부안의 상황은 그래도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해 꾸준히 알려지고 있다. 원불교역사박물관에 근무하는 고대진 교무가 그 사람이다.

그는 매주 화요일 원불교가 주관하는 촛불집회 때면 어김없이 비디오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다. 화요일뿐만 아니라 1주일에 2∼4일 정도는 근무를 마치고 꼭 부안을 찾는다. 그가 촬영한 자료들을 가지고 익산의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 뉘어야 할 터이지만 또 밤을 세워 사진과 비디오 자료 편집에 몰두한다. 그가 자료를 올리고 잠드는 시간은 새벽 4시쯤이다. 다음날 아침 원불교 교도들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안의 실상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의 정선된 자료는 그가 운영하는 반핵싸이트(nonuke.or.kr)와 부안대책위 홈페이지, 중앙총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교역자광장에 올라간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핵없는 세상 만드는 원불교 사람들’이란 마크가 선명히 찍힌 그의 자료는 각종 반핵단체와 관련 환경단체들이 ‘퍼’간다.

예전엔 부안성당의 인터넷 대안신문인 ‘참소리’의 사진과 영상자료가 부안의 유일한 사실적 보도였다. 그러나 이제 고 교무가 만드는 ‘핵없는 세상 만드는 원불교 사람들’의 ‘품질좋은’ 영상자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신뢰성도 높아졌다. 그의 노력은 반핵운동과 더불어 대사회 간접교화의 몫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넘어

1∼2시간 분량의 비디오를 5∼10분의 정리된 영상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노트북이 고물이라 편집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도 비디오카메라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컴퓨터 성능이 좋다면 편집시간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영상편집에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과 과중한 시간투자가 압박해오지만 본원을 생각하고 묵묵히 견뎌낸다.

사실 그에게는 디지털 카메라가 전부였는데 몇 달 전 디지털 비디오카메라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며 부안에 대한 그의 활동에 냉소와 짜증을 보내던 월급쟁이 정토가 이해의 표시로 170만원의 거금을 들여 사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업그레이드 된 자료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고 교무는 그 비디오카메라로 부안의 ‘전장’을 누비고 다닌다. KBS나 MBC등 부안의 실상을 왜곡하는 공영방송과 신문사 기자들의 취재에 야유를 보내고 카메라를 위협하는 부안주민들도 고 교무만은 예외다. 그의 얼굴이 어느새 부안주민들의 마음에 투영된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교단의 모든 사람들이 부안에서 떠났지만 부안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만의 외로운 반핵운동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건없는 양심적 외침

고 교무는 ‘핵없는 세상 만드는 원불교 사람들’(대표 성명종)의 홍보 담당이다.

‘핵없는 세상 만드는 원불교 사람들’은 영산성지수호대책위 비상기획단이 해체된 이후 홀로 지역의 투쟁중심에 선 김인경 교무를 돕기 위해 지난 8월 인근 출가 교무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의 현장으로 돌아갔고, 이젠 대표인 성 교무와 고 교무만이 힘겹게 지원조직을 끌어가고 있다.

고 교무는 ‘핵없는…사람들’의 반핵 싸이트 nonuke.or.kr의 운영과 영산원불교대에 설치되어 있는 서버 관리를 하며 부안 현지정보를 수집하여 종합관리 한다. 교단의 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 그만의 조건없는 양심적 외침이다. 부안교당 김인경 교무와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뜨거운 7월 영산에서 반핵 비상기획단 활동을 하며 핵은 어떤 이유로도 안된다는 인식의 싹이 텄고, 이제 종교인의 도덕성으로 그 일을 해가는 것이다.

“정부의 핵정책이 전환되는 날 까지 계속하겠습니다.”

평소 과묵한 그의 단호한 말에서 부안 핵폐기장과 우리나라 반핵운동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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