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시원한 물과 바람이 있는 바다와 계곡을 찾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와 관련된 법문을 통하여 성리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대종경 성리품 11장에는 다음과 같은 법문이 있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하시고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 하였다. 이는 공부인이 스스로 자신의 성리공부를 점검할 수 있게 한 법문인데,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시원한 계곡에서 더위를 식히며 연마하기 좋은 법문이다.

그러나 이 법문은 한자의 무(無)자와 비(非)자가 겹쳐 있기 때문에 말과 글을 통해서나 분별사량심으로 해오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반인에게 있어 이는 어디에 혓바닥을 대어 그 맛을 봐야 할지 난해하다. 그래서 증득하여 깨닫는 경지는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하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성리공부는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의 풍경보다는 어떻게 궁궐을 찾아갈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는 방법론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바다 속 용궁에 다녀 온 다른 이들의 여행담은 당연히 놓칠 수 없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이 법문에 대한 연마는 불교적 맥락에서 살펴볼 때 그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데, 그 소식이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 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능엄경(楞嚴經)의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에서 그 연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능엄경은 불교 강원의 공부과목에도 속하는 경전으로 불법수행의 대상인 마음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는 깊은 존재론적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전이다.

또한 능엄경은 불교수행에 대해서도 25가지의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소리로 성리의 세계에 진입하는 공부인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을 제일 수승한 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근원통 수행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리를 듣는 근본을 추구하여 성리를 증득하는 수행법으로 이는 수심결에서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수심결 18장에 보면 “네가 또한 가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느냐.” “듣나이다.” “네가 또한 너의 듣는 성품가운데에도 허다한 소리가 있음을 듣느냐.” “이 속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을 함께 가히 얻지 못하리다.”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이 이 관음보살의 성리에 들어가신 문이로다.”로 이어지는 문답이 나온다. 이 대목이 이근원통에 관련된 부분인데 이 공부는 한마디로 관세음보살 문중에서 공부하는 수행법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이근원통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근원통 수행은 처음에는 바깥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하다가 다음에는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켜 보는 반문문성(反聞聞?)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바깥소리를 듣는 것에는 계곡의 물소리나 해조음을 듣는 것이 좋은데, 법당 가운데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어 해조음을 듣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의 특이한 구조는 이러한 이근원통 수행을 위한 장치라고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방법은 손으로 귀을 막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몸안 심장에서 나는 비음(秘音)이나 기(氣)가 차크라를 통과할 때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인데, 이는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켜 보는 단계는 듣는 성품이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관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이런 상태가 돌이 되어 물소리를 듣는 경지이리라.

성리품 11장의 법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소리로 들어가는 이근원통 수행에서 제일 중요한 반문문성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인다.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 한국은 분주하다. 바야흐로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은 시절이 도래한 셈이다.

돌이 물소리를 듣는 소식은 어떤 것일까. 우리 스승님께서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하다 하셨으니 가끔은 생각을 쉬고 자신의 듣는 성품을 되돌아 봐야겠다.

경남교구 와룡산 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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