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찬이슬을 가득 머금고 교당의 한 켠 담벼락 아래 피어있는 화초를 어둠 속에서 찾아본다. 그리고 한마디 물어본다. ‘밤새 꿈자리는 어떠했니?’라고.

그리고 이내 태종대로 향했다. 오늘따라 태종대 바닷바람은 모질게도 불어온다. 앙탈을 부리는 고양이의 포효처럼 옷자락을 훑고 지나간다. 손전등의 불빛에 비추어지는 울퉁불퉁하게 각이진 돌투성이의 바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난 요령을 흔든다. ‘바다 위에 몸을 던진 지친 영혼들이여! 지난 일들일랑 다 놓으시고 정신을 가다듬어 부처님 법문을 들으소서.’

죽은 이의 넋들은 삶의 좁은 틈새에서 어떤 절망이 그리도 크기에 스스로의 삶을 이 천길 낭떠러지에 버렸단 말인가. 요령소리와 목탁소리는 태종대 앞 바다를 가득히 메워나간다.

어느새 태종대에도 날이 밝아오면서 제각각의 삶이 시작된다. 새벽 산책하러 왔다가 힐끔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원불교네”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 “교무님!”하고 반가이 손을 잡는 사람.

매점의 주인 아저씨도, 산밑 작은 점포의 아주머니도 따뜻한 차 한잔을 타서 내민다. 매표소의 청년직원들도 으레 길 막이를 열어준다. 그렇게 태종대 자살바위 출장 천도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온천장(교당회장님 운영)으로 발길을 옮긴다. 카운터 안내양들은 하나같이 일어서서 아침인사를 하고 난 늘상하는 질문을 던진다. “요사이 아무 사고도 없었지요?” 모두들 “네”하며 상냥하게 대답을 하고, 온천장 옥상에 있는 기도 방으로 안내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주인행세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도를 올린다.

온천장을 나와 교당으로 향하는데 “교무님”하며 누군가 부른다. 돌아다보니 태종대 길 노점에서 고구마를 튀겨 파시는 분이었다. “교무님, 우리도 잘 살게 좀 빌어주세요.” 그리고는 “교무님 오늘 첫마수라예~”하며 고소하게 튀긴 고구마 하나를 기름 묻은 손으로 내 입안에 넣어준다. “저예, 보리밥 장사할라카믄 우째 잘 되겠어예?” 색바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인생여정을 들으면서 고구마 튀김이 아침식사가 되어간다.

풍선을 터뜨려 동물인형을 상품으로 주는 노점상 주인도. 두더지 게임하는 것 몇 번 기웃거리다가 ‘한번 쳐볼랍니까?’하며 투박한 목소리에 밝게 웃는 상인도, 찌그러진 양은솥에 번데기와 쥐포를 놓고 파리를 쫓던 할아버지도, 그렇게 자연스레 친밀해진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힐끔 쳐다보던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이제는 인파로 번화한 태종대의 조용한 아침을 여는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당으로 오세요, 잘 죽는 법을 배워야 잘 사는 법을 알아요. 교당으로 오세요.” 그들의 마음속에 작지만 정성어린 울림을 남겨본다. 언젠가는 그것이 교당으로 오는 밀알이 되리라 여기면서.

<청학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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