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없는 도인’의 모습이다. 과학자의 눈과 종교적인 심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삶. 모든 사람이 다함께 잘사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공부 전령사. 우산 최희공 원무(본명 영돈·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원남교당)를 서울 시민선방에서 만나보았다.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집니다. 선방에만 들어서면…”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이 금새 친근함을 더해준다. “8월이면 벌써 10년이 되죠.” 그가 청년교화의 터전으로 가꿔온 시민선방을 두고 하는말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어김없이 열리는 수요선방에는 20여명의 청년들이 ‘마음’을 화두삼아 맹정진을 한다.

“시내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조용한 곳도 드물겁니다. 참 마음을 발견하여 활용하는 곳이지요.”

이제 인재발굴 도량으로 뿌리를 내린 이곳은 정신개벽의 산실이기도 하다.

수요일에는 염불, 좌선, 강연, 정전강의, 회화, 일기발표 및 감정등을 통해 마음을 단련하고, 1년에 두번은 스승님을 모시고 정기훈련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시민선방을 거쳐간 사람들중에는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원불교 교역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30명이다.

현재 교무 7명, 예비교무 20명, 도무 2명, 덕무 1명, 원무 2명, 정토 3명으로 최 원무가 청년교화에 열심히 공들인 결과이다.

기자가 “별명이 처녀귀신이시라구요?” 하자. “하하, 선방에 오는 여학생들이 저와 몇차례 상담을 하고 나면 출가서원을 세워 전무출신 하는 것을 보고 붙여진 것이지요.”

“인재발굴하는데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라고 묻자 “물론입니다. 마음공부가 그 비결이예요”라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성실하게 대조하게 하죠, 그리고 나면 스승님의 훈증을 받아 신맥과 법맥을 대게 합니다. 다음은 제생의세의 서원과 희생 봉사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무출신의 삶을 놓고 심한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죠. 그 고통을 넘기면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단계를 거쳐 결국 본인의 의지가 굳고 투철하면 반대의 벽을 뚫고 전무출신의 길로 가게 되는 겁니다.”
마치 완벽하게 짜놓은 한편의 교역자 발굴 시나리오 같았다. 자신의 인생은 물론 자신의 것이지만 지도자의 역량이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그에게 있어 ‘마음공부’라는 단어는 원불교를 알기 전부터 삶의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등의 의문 앞에서 내린 결론은 ‘마음을 바로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원불교의 마음공부를 만나고 부터는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원리를 성찰하여 직접 대조하는 공부가 그에겐 곧 즐거움이고 행복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비결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재발굴 차원을 넘어서서 ‘예비교무 교육인증제도’를 내놓아 교역자 교육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등 예비교무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 원무는 30여년간의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단 하루도 일과를 게을리 한적이 없다. 아침에는 수양정진, 낮에는 보은노력, 저녁에는 참회반성의 생활을 하는 원불교인의 모습을 성실하게 가꿔온 사람이다.

“어릴 때 증조모님의 종교적 영향을 받은 탓인지 공학도의 삶과 종교인의 삶을 균형있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가 공학도의 길을 가게된 것과 원불교 원무로 활동하는 것도 과학과 종교는 하나의 근원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됐고,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에겐 인생의 두 축이기도 하다.

새삶회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에겐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로 다가왔을 터.

“정신의 타락을 막아야죠. 도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속이지 말자. 은혜를 알아서 보은하자. 싸우지 말고 하나로 살자. 이것이 새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행동강령입니다. 우리는 이유가 없어요. 무조건 실천해야 합니다. 왜? 이것이 원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니까요.”라고 강조하는 최 원무.

부인 이성재 교도(원남교당) 사이에 1남(기덕 대1) 1녀(영진 고2)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최 원무는 절대신봉의 철저한 신앙생활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힘든 경계가 올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찍하며 오직 스승님이 하라는 대로 해왔던 것이 나중에는 묘하게 되어지는 이치를 경험했다고.

“가장 큰 매력이요? 어떤 경우에도 낙망하지 않는 것, 언제나 배우는 자세,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 제 장점인 것 같네요”

언제나 그는 ‘해야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허송시간이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 마음, 한 생각, 한 걸음이 부처되고 세상구제하는 일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일까.

오늘도 교법의 사회화를 위해 대종사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최희공 원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는 염원이 꼭 그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 약 력 ◈

1.원남교당 교도
2.호법수위단원
3.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80~현재)
4.고려대학교 차세대기계설계기술연구소 소장
5.새삶회장
6.수요선방 지도법사

▶ 학 력
1973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75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공학석사
1979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공학박사
1983.9~
1984.8 영국 UMIST 교환교수
1992.2~
1993.1 미국 UC Berkely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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