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를 일컬어 정보화 사회라고들 합니다. 아무데서나 번호만 누르면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인 채팅을 못하면 교실에서 바보취급을 당하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자주 보는 친구사이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이동통신의 발전은 생활에 이점을 주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을 복사기와 프린터, 통신 등으로 처리하다 보니 사람들간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사람들끼리 만나서 몸과 눈으로 나누는 인정마저 식어가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이어주는 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편지를 쓰자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화는 빠르고 쉽게 소식을 전할 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여러 가지 섬세한 마음과 정을 주고 받을 수는 없습니다. 편지를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의 대화이기 대문에 서로의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쑥스러워 하지 못하는 말까지 고스란히 담아 보낼 수 있어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 새로운 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뿐만 아니라 바른 글씨와 행동을 몸에 익히게 합니다. 즉 편지에도 예절이 있다는 말입니다. 친구에게 하는 편지와 웃어른에게 하는 편지는 어투부터 다릅니다. 따라서 편지를 자주 쓰다 보면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을 겸손히 하게 되고, 예절바른 행동과 말씨까지 자기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세대는 글 쓰는 능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평소에도 꾸준히 편지를 쓴다면 글쓰는 실력이 쑥쑥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정서가 안정됩니다. 저는 달 밝은 밤이나 비 내리는 조용한 시간이면 불현 듯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쓴 편지일수록 제 자신의 마음을 정성껏 진실되게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침대 옆에 있는 인형도, 풀숲에서 울고 있는 곤충도 편지의 좋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상대방에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은 어느 새 차분히 가라앉고 편안해 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매월 25일을 편지쓰는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 어버이날, 친구의 생일, 스승의 날 같은 행사일에도 값비싼 선물대신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받는 순간도 그렇지만 먼 훗날에도 잊혀지지 않고 다시 펴 볼 수 있는 따뜻한 인정의 편지들을 서로 보내고 받을 때 우리의 삶과 정서도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장유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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