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형 기자
월드컵 4강의 신화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월드컵 전 만해도 기회만 주어지면 이 나라를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겠다던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월드컵을 거치면서 반전되었고, ‘대한민국’은 이젠 젊은이들의 자존심이 되었다.

이것은 몇몇 정치인의 리더쉽도, 국가적인 운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붉은악마’로 일컬어지는 자생적인 그룹과,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커온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결정체다.

87년 전, 청년 소태산 대종사가 오랜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횃불은 9인 선진에 의해 다시 아홉송이의 횃불로 번졌다. 그리고 그 횃불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의 우리 교단을 이루었다. 다시말해 지금의 교단은 대종사의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젊은 선진들의 불같은 의지가 이룬 결실이다. 그래서 늘 우리는 스스로 ‘젊은 종교’라 자부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돌아보자. 과연 젊음을 불사를 만한 정열이 남아 있는가!

혹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는 젊은이들이 많다면 미래는 밝지 못하다. 희망의 땅을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일구려 하지 않고,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한 쪽 발은 적당히 담그고, 한쪽 발은 적당히 빼어서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이’가 많다면 서글픈 일이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눈치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적당히 성공을 이룰 수는 있지만, 정의를 실천하는 건전한 사회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자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버릇이야 조금 나쁠지 모르지만 정의를 실천할 용기와 창의력 가진 아이로 커갈 것이다.

교단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땅’이 되고 있을까 반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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