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대학 2학년 가을이었다. 그때 사귀던 여자 친구가 다닌다는 ‘원불교는 어떠한 종교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또한 그 당시는 혼란스러웠던 시대만큼이나 내 마음도 혼란스러워 광주교당에 처음으로 발을 딛게 되었던 것 같다.

그후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한방무료 진료단에 끼어서 봉사활동을 하였던 일들, 한달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좌선에 참석하였던 일들, ‘원청인의 밤’에서 대종사 역을 맡아 연극 하였던 일들은 지금도 내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여 녹동에서 학원을 시작하면서 원불교를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 8월 여느 날처럼 학원 차량을 운전하고 가는데 지름길을 레미콘차가 막고 건물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 코스는 하루에 3번씩 다녀야 하는 길인데 돌아가려니 짜증이 났다. 공사를 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지 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데 교무님 두분이 내 차로 뛰어오셨다. 한분은 고흥교당 교무님으로 어린이날 행사 때 만나서 인사를 드렸던 분이셨다. 옆에 계신 분은 소록도 교무님으로 이곳에 교당을 짓고 있다고 하셨다.

녹동에 원불교라! 잊혀졌던 원불교가 다시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처음 녹동에 내려와서는 아무 경황이 없었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좋아하는 낚시와 테니스, 술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생활이 지나자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감이 들기 시작했다. 30대가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고 40에 접어드니 왠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원불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방황할 때마다 원불교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교당이 완성되고 바닥의 나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법당에 앉으니 청아하게 들려오는 경종소리가 내 마음 구석구석까지 전달되며 참회인지 혹은 환희인지 모를 뜨거움이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난 다짐을 하게 되었다. 녹동교당의 영원한 마당쇠로 살기로.

마당쇠의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교리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생때처럼 새벽 좌선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술을 멀리하게 되었다. 일요일이면 성가지도도 하고 멀리 사시는 교도님들을 모시러 다니기도 한다. 교당일에는 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녹동지역 교화를 위해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하겠기에 말 한마디에도 조심을 하게 된다. 부모님들도 교당에 다니시도록 하였고 형제들 교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녹동교당의 마당쇠로서 자격을 갖추기에 노력할 것이다. 원불교로 나를 인도하여주고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아내에게 감사를 드린다.

신 재 윤 교도 녹동선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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