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신축 서원 이루다 ②

교당을 지었으니 이제는 다가오는 행사에 대비하면서 일상수행의 요법과 상시응용 주의사항을 수지염송하면서 동정간 자성을 여의지 않는 무시선 무처선 공부에 정진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우선 일상과 상시와 응용과 주의의 뜻을 풀어봤다. 일(日)은 「날 일」자요 시(時)는 「때 시」자 인바, 날을 나누면 시가 되고 시를 합치면 날이 되니 일과 시는 둘이 아니다. 일상과 상시의 상(常)은 「항상 상」자이니 존재하는 모두의 간단없이 이어지는 삶이요. 응용이란 응할 응(應)자에 쓸 용(用)자이니 우주만유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에 접응하여 육근의 씀씀이요, 주의란 쏟을 주(注)자 뜻의 생각 의(意)자이니 동과 정에 이념을 쏟으라는 경고, 경계, 경보이다.

일시는 흘러 흘러 3~4년이 훌쩍 지나고 10회 강습회를 맞이했다. 김일현·김중묵 교무를 모시고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법문을 연 4일 동안 오전 오후로 열었는데, 끝나는 날은 청중의 간청에 의해 밤시간까지 주옥같은 열변으로 모두를 법의 도가니에서 녹이는 듯 하였다. 그 후, 개교 반백년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와서는 우연히 교당 신축부지 300평(현위치 600평중 일부)을 매수하게 됐다

당시 세 자녀가 모친의 보살핌 아래 전세방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내집 마련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한번은 집을 사려고 돈을 준비해서는 기쁨과 희망을 안고 상경한 적이 있다. 서울 국립묘지앞에 이르니 한 눈에 서울이 들어오는데 그 순간, ‘수 많은 지역민의 도움으로 번 돈인데 사사로이 내집 마련을 먼저 해야 하느냐? 아니다. 지역민에 보은을 먼저 해야지. 국한없는 수 많은 지역민의 개도를 위해서 인생유한, 종교무한이니 원불교 교당을 멋지게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전광석같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날로 귀가했고, 가족은 놀란 기색이었다. 먼저 법신불전에 인사·심고하고 사유를 아뢰니 희색으로 반겼다. 온통 바치는 심정이 그렇게 기쁠줄은 처음 경험했다.

때에 식산계가 종료됐다. 그런데 보관상의 부도로 계미48가마가 회수불능했다. 그래서 법적 수속을 거쳐 집행하려 하니, 당사자는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이 채무승계를 해야했다. 생각을 거듭하다가 채권포기를 선언하고 문서를 파기하니, 그 가족들이 의외에 놀라 감사를 올렸다. 만약에 서울에 집을 샀더라면 이 수습을 어찌 했을까!

교당건축양식을 수집하기 위해 사진기를 샀다. 총부를 비롯해 잘 지었다는 팔봉·정읍·광주교당 그리고 거리에서도 좋게 보이는 건물이면 찾아가 찍었다. 12회 강습회를 일찍 끝내고, 새 교당 설계용역을 맡긴 후 건축을 청부시켜 10월 19일에 기공했다. 이듬해 원기58년 1월26일 먼저 입주를 마치고, 13회 강습회를 열어 환희와 신심을 거양했다.

대망의 9월17일, 봉불낙성식을 교정·감찰 양원장님 임석하에 주민 500여명의 축하를 받으며 거행하니, 이 고장 초유의 대성사였다. 성의를 다한 넉넉한 공양으로 모두 풍족했다는 후평도 따랐다. 대각전 현판은 이운권 종사님께서 써주었다.

‘오! 법신불 사은이시여, 끊임없는 호렴에 감사합니다. 이 땅을 불은화(佛?化) 하옵소서. 한량없는 세월에 한량없는 중생들, 성불제중의 기연이 되게 하옵소서.’

<원광상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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