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영산에 돌아온 까닭은?

▲ 이덕천 김해교당, 전 원불교청년회 부회장
지난 8월 14일과 15일은 원청의 역사에 또 하나의 족적을 남긴 날이다. 일천여명이 넘는 원청인들이 대종사님과 구인 선진님들이 제생의세의 불길을 치솟아 올린 영산의 기도터에서 창생을 구제할 기도로써 내일을 향한 염원을 모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함께 우리의 지나온 길을 돌아보자. 서기 1984년, 지금부터 20년 전의 원청20주년대회는 어찌했는가? “자신에게 믿음을! 이웃에게 은혜를! 민족에게 화합을! 인류에게 희망을!”이라는 원청 사대강령을 힘차게 외치면서 전국에서 총부로 모여든 청년들, 일만여 명에 달하는 원청인들의 하늘을 찌르던 기상은 어디에 갔는가? 그로부터 20년, 일만여명의 원청인들은 10분의 1로 줄은 일천여명이 되어 영산으로 유턴하여 돌아와서 소박하게 법인기도의 해제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원청은 분명, 뒷걸음질을 쳤다. 교단의 전위대이고, 교단의 미래인 원불교청년이 뒷걸음질 쳤다면, 당연히 우리 교단도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청년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단의 모습이 미래지향적이질 못하고, 청년의 기상과 의지를 교단이 수용하지를 못하면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성격을 가진 존재가 청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원청은 ‘창립40주년대회’를 치르질 못하고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안고 있다. 분명히 그럴 사정이 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겸허해야 한다. 서기 1994년의 원청30년기념대회의 주제는 “민족, 환경, 통일”이었다. 이번 40주년 기념의 주제는 “평화, 생명, 인권”이다. 20주년의 사대강령이나 30주년, 40주년의 주제는 청년대종사님이 정신개벽을 부르짖었듯이 어느 것 하나 시대에 뒤지지 않고 사회와 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개척할 만큼 선도적이었으며, 적실하였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문제는 원불교청년들이 이러한 주제를 갖고 고민하고, 실천하고, 뛰어놀 만 한 넓은 마당을, 판을 교단에서는 만들어 주었는지 반성할 일이다. 지금, 10분의 1로 준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생생약동하던 원청의 인재들이 다른 곳, 다른 무대에 가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해볼 일이다.

이제, 40주년의 기도를 해제하고난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솔직하고 겸허하게 원청의 40년을 돌아보는 일이다. 지난 날을 평가반성하고 새날을 열 웅지를 틀자. 새날을 열어갈 계획을 세우자. 새 기운을 모으자. 오늘날에도 원청의 인재는 많다. 그들이 헌신할 만한 판을 벌여보라.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민족에게 해원상생의 밝고 따뜻한 광명을 줄 무대를 벌여보라. 인물들은 구름떼와 같이 몰려들것이다. 창생을 구제할 인재들은 자신들의 뜻을 알아줄 지도자와 자신들의 웅지를 실현할 탁 트인 판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