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원불교문학상 대상 / 산문

▲ 김명은 교도 정토회관
이제 까치집에도 제법 봄이 오려는가 보다. 높은 나무 가지 끝으로 비추는 따뜻한 봄 햇살이 정겹다. 하지만 어제 밤부터 내린 비 때문에 까치가 추위에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가끔 나뭇가지 끝에 높이 매달린 까치집을 보는 버릇이 있다. 까치집은 추수가 다 끝난 늦가을이면 벌거벗은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그럴 때면 나는 20여 년도 더 된 오래 전의 옛 기억이 아직도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부산의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용두산 공원은 모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상인들의 고함소리에 숨통이 막힐 것 같은 국제시장을 지나 그 너머로 호젓한 길을 따라가면 곧장 공원에 이른다. 실상은 그 유명세에 비하여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공원길을 오르면서 볼 수 있는 송도 앞바다의 운치 때문에 그 곳을 찾는 것 같았다.

공원에는 비둘기들이 참 많았다. 손바닥 위에나 땅 위에 흩어진 먹이를 쫓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늘 비둘기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심심하지 않았다. 비둘기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둘기가 사는 모습이 평화로워 나는 점심시간이면 가끔 이곳을 찾곤 하였다.

그런 내게 한 후배가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며 멀리 이리에서 찾아온 낯선 남자와 첫 만남을 주선했다. 그와 인사를 하고 여느 때처럼 용두산 공원을 들렀다. 언제부터 만나고 싶다는 말을 후배에게 전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부산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팔각정에 앉았다.

그는 삶을 불가(佛家)에 의지한 것처럼 청빈하고 소쇄한 분위기가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가끔씩 넣었다 빼는 보리수 염주의 무채색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언젠가 삼동원에서 법사님으로부터 연밥으로 만든 염주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실은 아무른 채색이 없는 보리수 염주를 갖고 싶었다. 그런 나는 내심 그의 염주를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짧은 소견으로 그의 삼매(三昧)의 깊이를 다 가늠 할 수 없었지만 어지간히 굴린 염주의 손때자국이 그의 삶의 편린을 짐작하게 하였다.

그때, 그가 멀리 바라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가르쳤다. 공원에서도 키가 가장 큰 느티나무였다.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잎으로 노인들의 쉼터가 되어 주는 나무였다. 늦가을이면 발 밑에서 바스라지는 이파리가 공원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도시의 황량함을 가셔주었던 그 나무에는 겨울의 날카로움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까치집이 있네요.”

그의 목소리는 도심의 삭막함 속에서 찾아낸 반가운 보물인 듯 소리쳤다.

할머니네 집 마당에 가끔씩 찾아와 울음 울던 까치를 본 적은 있었지만, 스무 남짓이 넘는 그 무렵 내가 까치집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손끝에 매달린 까치집은 너무나 높아서 그가 지닌 서원(誓願)의 청량감 마냥 그저 멀기만 하였다. 가을 잎이 다 떨어져 버린 고목의 나뭇가지 사이로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집을 지은 까치의 속사정을 나는 한 뼘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의 시골집에는 창호지 방문의 봉창너머로 까치둥지가 보인다고 하였다. 대학시절, 명예보다 세상에 유익을 주는 청빈한 도가(道家)의 삶을 길들인 것도 실은 그 까치집 때문이었다고 한다. 높은 나뭇가지에 집을 지었지만 위태하지 않고, 나무 삭정이로 소박한 집을 만들 수 있는 까치의 영민함처럼 자신의 삶도 그러하기를 기도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삶의 깊이를 잘 모르는 마치 말간 물처럼 제 맛을 모르는 스무 대 여섯 남짓의 그 시절, 나는 그의 이상이 너무 높아 그것이 꿈으로 끝이 날까 두렵다고 말했다. 낯선 까치집보다는 다정한 비둘기집이 더 살갑다며 나는 공원복판에 예쁘게 있는 비둘기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두산 뒤편으로 길게 이어진 돌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가끔씩 그의 발에 차이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맨 끝 계단을 내려선 그는 오래도록 만나고 싶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며 악수를 청하였다.

이제 나는 불혹의 나이인 사십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까치집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얻지 못한 인연에 대한 연민은 아니다. 그 날 그의 높고 아름다운 꿈을 진부한 세상살이보다 못하다는 것으로 치부한 것은 아니었는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철없던 그 순간이 아련하여 가슴이 시리다.

이십여 년 전, 아득하기만 하였던 까치집을 사계절 바라보노라니 높은 곳에 동그마니 걸려있는 까치집에도 꽃물이 드는 봄이 있고 삼복의 폭염을 피해주는 초록의 무성함이 있음을 알았다. 다만 한겨울의 무심한 바람이 부는 날도 있어 더 굳세고 강직한 울타리를 만듦을 나는 몰랐다. 꽃이 피고 신록이 무성한 것처럼 그 어디선가 까치집을 바라보고 있을 그의 다부진 꿈이 여물기를 이제사 나는 바란다.

간 밤 내린 봄비에 어느덧 꽃잎을 머금은 벚꽃의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먼 곳 까치집에도 들릴 것만 같은 봄날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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