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로 원광대에 편입한 임도인 예비교무

『1996년에 야기된 전국 한의과대학 사태 때 학교가 3개월동안 휴업을 했는데 그때 친구 소개로 원기81년 만덕산 하선에 참석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종교훈련이라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임했었지요. 그러나 하루하루 넘기면서 처음 듣는 일원상진리인데 참으로 진리적 종교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올해 2월 동국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한의사 임도인 교우. 그가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편입, 원불교와 첫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회고한다.

교립 원광여고를 다녔던 그는 『재학 중에 「교사(敎史)」 정도만 배워 원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졸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교법을 그때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 했다.

하선을 마치면서 승산 양제승 원로교무의 연원으로 입교하고 서울에 올라가서는 친구와 하선 동기생들의 소개로 원남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서 최희공 원무(고려대)를 만나 서울 시민선방에서 줄곧 마음공부를 해왔다. 그는 『뒤늦은 공부였지만 저 자신이 마음공부한 내용을 스승님께 소상히 보고하여 감정을 받는 등 줄맞는 공부를 해온 것이 전무출신을 서원하게 된 결정적 동기였다』고 말했다.

시민선방에서 마음공부를 꾸준히 하며 자신에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제들의 해결점을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은혜로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공부로 치유하면서 육신병의 근본인 마음병 치료가 더 시급하고 또한 두가지 치료법을 아울러야 온전한 치료가 될 수 있음을 자각, 내심 전무출신 서원의 뜻을 굳혔다고 한다. 그러나 성불하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제중을 해야한다니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다.

그러던 차에 계기를 맞았다. 한의대 동급생들과 함께 한해를 유급당하고 두해째 최희공 원무가 등록을 하라고 권하자 그는 망설였다. 그때 최 원무가 『선악을 초월한 제생의세의 삶을 살고 큰사람 큰살림을 해야 한다』고 지도해줘 한 매듭을 짓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오빠들을 설득하는게 과제였다. 먼저 영산성지에서 3일간 머물면서 참회기도를 올리고 황직평 교무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1월 중순, 가족들이 모인자리에서 『전무출신을 하겠다』고 중대발표를 했다. 가족들이 적극 찬동은 하지 않았으나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여 그나마 감사했다고 한다. 그간 부녀사이로 참 많은 대화를 하며 아껴주던 아버지가 남기신 『참, 서운하다. 하지만 네가 결심을 했다니 어쩔 것이냐』는 짧은 한마디를 그는 끊임없는 경책으로 받아들이며 살것이라고 한다.

그는 『육신병 치료하는 한의사는 됐으니 이제는 그보다 근본되는 마음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정진하겠다』면서 『영겁법자(永劫法子), 영겁주인(永劫主人)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세계에 그와 같은 법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연들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과 함께 든든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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