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총부에서 어느더 봄이 찾아와 꽃들의 잠을 깨우고 있다. 하얀 매화뒤로 펼쳐진 영모전 뜰에서는 아지랑이가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 김맑음
해빙기가 되면서 만물이 깨어나고 있다.

아직 겨울의 뒷끝이 남아 있는 이즈음이지만, 계절은 엄연히 봄이다. 절기상으로 경칩 무렵이면 자울자울 자고 있던 생명체들이 일제히 활동을 시작한다.

연둣빛 새싹들이 소곤소곤 얘기 꽃을 피우는 이때, 가벼운 마음으로 봄 마중을 나가보자. 겨울의 무거운 찌꺼기를 털어내고 봄의 환희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다짐을 새겨둘 일이다.

요즘 어디를 가나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속삭이듯 서걱이는 연초록의 물결, 그리고 아이들 함성.

봄은 산빛에서부터 온다. 봄이 아기의 뒤뚱거리는 걸음처럼 다가설 때마다 산빛의 표정과 빛깔은 표나게 달라진다. 황량하기만 하던 산빛이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옛 어른들은 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첫째계절일 뿐만 아니라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므로, 봄이 주는 힘은 크낙한 것이었으리라.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워야 한다(一年之計, 在於春)」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말이다.

3월은 누구에게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농부들은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들어가고, 직장인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맡은 바 일에 열중하며, 정든 학교를 떠나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들은 냉혹하면서도 낯선 조직생활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 때이기도 하다. 학년과 학기가 바뀐 학생들은 새로운 결심과 희망으로 책가방을 챙길 것이며.

봄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기도 했다. 옛 어른들은 아들을 낳고자 하는 집에서는 봄이 시작되는 입춘에 받아 둔 물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부부가 이 물을 마시고 동침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입춘 때에 내리는 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듯이, 입춘에 받아 둔 물은 생명을 탄생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3월 삼짓날에는 처음 본 나비의 빛깔로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는 길조이지만, 흰나비는 부모상을 당할 것이라 하여 꺼렸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흘러 아름다워지리라 믿었다.

봄은 왕성한 생명력을 뽐내는 계절임에 틀림없지만 때론 사람을 허무의 감정에 빠뜨린다. 특히 여자에게 있어서 봄에 느끼는 허무감은 더하여 「여자상춘(?子喪春)」이란 말까지 생겼다. 회남자(?南子)에 보면 「봄에 여자가 슬퍼지고, 가을에는 남자가 슬퍼진다」고 하였다.

덧없는 일, 허무한 일을 이르는 말로 일장춘몽(一場春?)이 있다. 또 「봄 꽃도 한 때이다」라는 속담도 봄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내용이다.

우리 문학작품에서도 봄이 주는 허무감과 슬픔이 짙게 드러나고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춘망부(春望賦)」에서 「오직 봄만은 때에 따라 곳에 따라, 화창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저절로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고 읊고 있다. 김억의 시 「봄은 간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한하운의 「보리피리」들은 그 당시 나라 형편과 함께 봄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모든 생명을 잉태시키는 봄은 문학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나타난다. 봄은 방향으로 볼 때에 동쪽에 해당하고, 빛깔로 볼 때에 초록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는 모두 새로운 출발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고전소설에서 남녀 주인공이 만나 인연을 맺게 되는 시간적 배경은 봄이었으며, 또 헤어졌던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계절도 봄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춘향전」이 그렇고, 김유정의 「동배꽃」이나 「봄봄」같은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봄은 또 곤궁(困窮)의 상징이기도 했다. 보릿고개 또는 춘궁기(春窮期)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곳간에 있던 식량은 겨울에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봄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자주 쓰였던 말이다.

일찍이 워즈워드는 「봄철의 숲 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상의 악과 선에 대하여 어떠한 현자(賢者) 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 그만큼 봄은 모든 면에서 상징성이 폭넓게 부각된 계절이었다.

각설하고 오늘 아침, 방문으로 비쳐드는 다사로운 햇살과 눈맞춤을 하면서 마음이 훤히 트임을 느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나와 흙갈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반달 모양으로 붕긋 솟아 있는 야산 숲은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칙칙한 빛깔로 적막감마저 느끼게 했던 숲이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연두색은 봄의 색깔이고, 젊음의 색깔이다. 생명과 만물의 재생을 상징하는 연두색을 일러 어느 평론가는 「처음, 시작, 출발의 색이 연두색이다. 아니 연두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색이 아니라 초록을 향해서, 푸르름을 향해서 가고 있는, 솟아오르고 있는 화살표의 색채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렇다 봄은 연두색을 두르고 그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는 것이리라. 아름다움으로, 오묘함으로, 신비함으로 저마다의 마음에 추억의 무늬를 새겨넣는다.

눈길을 남쪽으로 주면 또다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그 너머 산마을은 조는듯 웅크리고 있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행렬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저런 살아 있는 풍경을 보면서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듣는다. 그 고요하고 역동적인 흐름이 좋아 오래 전부터 들어온 음악이지만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나 혼자만이 듣기 미안해 물오른 나무에게도 꽃들에게도 바람에게도 그 고운 선율이 전해지기를 빌며, 이것은 작은 기쁨이자 소중한 발견이다. 음악은 삭막한 살이에 샘물같은 맑음을 얹어주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봄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이다.

특히 봄꽃은 그 화사함과 청초함이 유별나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는 물론이고 개나리, 진달래, 목련의 그 여림은 아기의 뺨살처럼 곱기만 한데…….

곧 꽃눈이 벙글면 그 꽃향기가 사방에 퍼져 사람들 마음에 꽃멀미를 일으키겠지. 이 설레임을 주체할 수 없어 종종 어린아이가 된다. 요즘 이런 기분으로 산다.

꽃바람이 분다. 누구에겐가 새봄의 첫편지를 쓰고 싶은 3월이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동요 「고향의 봄」을 음미하면서 동심을 생각해 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오후, 꽃눈 맺힌 목련이 나를 사색에 젖어들게 한다.

〈본명 동정, 동화작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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