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님께서는 「경전은 공부인으로 하여금 공부하는 방향로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정전 정기훈련법)고 하셨다.

경전은 성불의 길을 가게 하는 지도이며 이정표이다. 공부인이 공부의 방향로를 찾았다면 그 길로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면서 주어진 길을 찾아가기 보다는 경전에 묻혀 이를 쓰고 암기하고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지도란 길을 찾는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만 바라보고 그 내용을 쓰고 외우는 일에 매달려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종사님은 이미 이를 염려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경전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야 도가 있는 사람으로 인증한다」 하시고 「그대들은 삼가 많고 번거한 옛 경전들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마땅히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뛰어난 역량을 얻은 후에 저 옛 경전과 모든 학설을 참고로 한 번 가져다 보라」(수행품 22장) 하셨다. 이는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삶의 터전이었던 산업사회는 고학력자를 배출하는 지식교육에 주력하였다. 한사람이 지닌 실력은 암기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능점수를 잘 받아야 했으며 많이 배우고 익힌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머리에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도리어 무능한 사람이 되고 있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의 기억은 컴퓨터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사람들의 능력은 지식의 암기정도가 아니라 상상력과 창의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고 기발한 발상을 창출하여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는 사람이 요청되고 있다.

여기 우리의 교화·교육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경전을 암기하고 법문을 머리에 기억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맑은 영지(靈知)에 또 하나의 무명을 쌓아가게 한다. 많이 암기할 수록 더 어두워지고 더 많이 분별할수록 실천하는 힘을 잃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간단한 교리를 그대로 체험하고 마음을 비우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간절히 요청되고 있다. 인간의 머리는 맑고 텅 비어야 한다. 그래야 번뜩이는 직관력이 살아나고 신선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21세기 이상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다.

대종사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교단은 실로 엄청난 법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진리를 증득한 공부인은 이에 비례하는가.

우리의 교화·교육현장에서 머리로 교리를 듣고 쓰고 암기하는 공부법은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주어진 간단한 교리를 하나 하나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체험의 방법을 개발하여 고품질의 정신적 상품을 대중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상이 우리를 외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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