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정성

원기81년 9월29일, 미국 동부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찾아왔다. 시카고에 있는 아티티사에 들러서 제품검사를 하고, 뉴저지주에 있는 한국전력 지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마침 심산 고원기님께서 기술제휴를 검토하고 계신 회사가 필라델피아에 소재하고 있는 지라 출장일정을 조금만 빨리 진행하면 이틀정도는 여유가 생겨서 신규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심산님께서는 일주일 먼저 미국 방문길에 오르며 상황이 변할 경우를 대비해 미국에 있는 연락처를 주었다.

미국에서의 업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더구나 감독기관인 한전의 담당과장이 후배였는지라 이틀정도 소요되는 제품원리에 대한 소개와 시험결과의 확인절차를 새벽녘까지 강행하여 종결지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하루의 여유가 더 생겨서 넉넉한 마음으로 신규사업 업무를 볼 수 있었다. 10월3일, 회사일행으로 하여금 뉴욕과 나이아가라폭포를 관광하게 하고, 나는 뉴욕 맨하탄에서 심산님을 만난 후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3시간 가량을 승용차로 달려서 심산님댁에 당도하였다. 2층 침대방으로 안내된 나는 침대 머리맡에 비치되어 있는 한복 차림의 대산종사 진영을 발견하고 먼 이국땅에서도 뵈올 수 있음을 감사드렸다.

10월4일, 심산님과 함께 워싱턴근방에 씨에스에스사를 방문했다. 벤처기업형태의 회사로서 전세계를 상대로 기지국 장비에 대한 영업을 전개하는 실력있는 회사였다. 사장과 부사장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협상결과는 관련도면과 기술일체를 신회사에 제공하는 대신 주요부품을 스페인 수출가격으로 구입하는 조건이었다. 원가부담과 함께 공장과 시험설비를 국내에서 투자해야 하는 여건때문에 일정량 이상의 매출이 있어야만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10월5일, 구체적으로 국산화 품목과 영업방안에 대해 협의를 마친 후 서둘러 필라델피아역에서 뉴욕행 기차를 탔다. 숙소에 도착하자 회사 일행은 나에게 “개인 업무가 너무 길지 않았느냐”며 볼멘 소리를 했다. 나이아가라폭포로 가던 중 운전자의 방심으로 버스가 5미터 높이의 경사진 둑아래로 굴렀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워낙 튼튼해서 몸이 성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라며 푸념을 늘어 놓았다. 나도 쉬운 여행만은 아니었다며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했다.

귀국후 신규사업비용 조달과 고객확보 차원에서 ‘보광창업투자’를 방문하여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국내의 휴대폰 사업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인해 상기 투자회사 경영진의 생각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해 11월말까지 검토된 신규사업은 아쉬움을 남기고 중지되어야 했다. 하지만 신규사업 검토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현금 흐름지표를 작성하여 보는 것이 신규사업시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체득했다.

원기83년 12월25일, 매주 법회시 배포되는 주보가 발행된지 어언 200호에 이르게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초기에 월보형태로 발간되던 ‘신창원회보’ 36회분과 주보로 발간된 164회분을 총망라해 ‘하나로 가는 길목에서’라는 제목으로 기념책자를 발간했다. 편집위원으로써 감회가 남달랐지만 바쁘신 가운데 발간을 주관하여 주신 이관도 교무님을 비롯, 교정작업과 디자인에 애써주신 육관응·오정행 교무님 그리고 김진성 교무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잠시 발행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던 ‘한마음회보’의 원기74년 1월분을 필두로 원기83년 9월30일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동안 감각감상과 심신작용 처리건 그리고 시와 생활수기를 제출하여 주신 교도님들의 상없는 정성에 고개가 숙여졌다.

<신창원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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