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교구 사창교당

“전무출신을 어떤 정신으로 사십니까?"하는 질문에 “모두 바치는 정성으로 살지요. 여기에서요” 하고 흔연스럽게 웃으며 답하는 이시인 교무(50).

수계농원, 마령교당, 정릉교당에서 부교무생활을 하고 원기69년 11월 사창교당(전남 장성군 삼계면 사창리)에 부임, 이곳에서만 16년째 교역에 임하고 있다는 이 교무. 이제는 다른데로 갈 생각은 접고 이곳 사람들을 위해서 살 작정이란다.

원기68년 장성군 삼서면에 사는 청산 백심전 교도의 특별 희사로 지어졌던 교당(초대교무 최성양)이 당시 이 지역에서는 큰 건물이었다. 3년 전, 장교를 양성하는 군부대인 상무대가 이곳으로 이전해오면서 인구도 늘고 학교와 군인아파트 2천5백세대 등 큰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그래도 언덕 위에 자리한 교당에서 보니, 삼계면이 한눈에 들어 온다.

‘된장 교무님'이란 이 교무의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교당 아래에 크고 작은 항아리 70여개, 저온 내장고, 우리콩과 소금을 저장한 창고, 비닐하우스 작업장, 텃밭 등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된장 만들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부터 묻자, “사람 하나 살리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부임하고 나서 교당 건축 후 남아 있던 부채를 다 갚았을 즈음, 남편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내고 혼자서 공장에 다니며 4남매를 기르던 김명은 교도가 어느 법회날 아침 일찍 교당으로 달려왔다.

두손으로 배를 움켜 쥐고 계단을 올라왔는데 배에 칭칭 감겨있던 피묻은 천을 풀어보니 창자가 밖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진즉부터 아팠지만 사는 형편 때문에 참고 살아왔던 것이다.

다급해진 이 교무, 출납장을 보니 교당에 있는 현금이라고는 9만원. 수술을 하려면 100만원은 족히 있어야 하는데 '어찌할꼬 어찌할꼬' 걱정하다가 그 이튿날 있을 교구 교무들의 야외 훈련에 가서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이튿날 훈련에 참석한 이 교무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사창교당 만들 청국장을 각 교당에 팔아달라고 했다. 교구 교무들이 이에 적극 호응, 이 교무는 교당에 도착하자마자 김명은 교도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 갔다. 그는 병원비를 걱정하며 한사코 뒤로 물러 섰다. 이 교무는 “사람 있고 돈 있는 것이라”며 야단을 쳤다.

의사는 환자를 데리고 온 이시인 교무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봤다. 환자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를 했다는 눈치였다. 전후 사정을 들은 의사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 갔고 수술 결과는 좋았다. 교당에 돌아 온 시인 교무, 교구에 다녀 오느라 쓴 경비를 제하고 난 6만원으로 콩을 사려고 하니 태부족, 교당 이웃에 사는 김혜광 교도에게 돈을 빌려 콩2가마니를 샀다.

면사무소에 다니던 김혜광 교도의 남편이 퇴근 후 콩을 날라다 줬고,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교도들과 함께 콩을 삶아 청국장을 앉혔다.

1주일 후 퇴원을 해서 교당에 온 김명은 교도,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이 소식은 지역사회에 한동안 따뜻한 미담으로 회자했다. 교화도 날로 번창했다. 천도재가 줄이어 들어오고, 4월 초파일도 성황리에 이뤄져 교당 개보수도 했다. 4∼8Km 이상 떨어진 먼곳에서 오는 교도들을 위해 승합차도 구입, 법회 참석이 편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느 농촌이 그러하듯 사창교당에도 이농현상은 예외가 아니었다. 불과 몇 해 사이에 일원가족 15세대가 이사 갔고 100여명이던 교도 수는 4,50명 선으로 현격히 줄었다.

그래서 이 교무는 자립을 하기 위해 고추농사와 콩농사를 짓기로 했다. 노는 땅은 얼마든지 있었다. 많을 때는 40마지기 정도의 밭농사를 지었다. 지역 사람들이 트랙터로 밭도 갈아 주고, 교당 교도는 물론 교구 봉공회원들도 도와 줬다.

교당에서 만든 청국장과 된장은 광주·전남교구는 물론 서울교구, 경기·인천교구, 부산교구 등 전국 각 교구 바자회에 출품, 그 맛을 인정받았고 해마다 주문생산을 했다. 청국장은 지역마다 선호하는 입맛이 달라 그에 맞춰 공급했다.

한 해는 원광식품이 만들었던 메주가 잘못되어 바자회를 앞두고 각 교구 봉공회에서 메주를 주문했다. 메주 만들기는 그 때를 계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영산원불교대 수익사업체인 영산식품(전 원광식품)도 판매하고 있어서 그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교구 바자회와 개인 주문만을 받고 있다. 원광대 광주한방병원은 주요 고객이다.

처음엔 1년에 70Kg 50가마로 시작했던 메주콩이 지금은 100가마 정도 된다. 콩은 순 우리콩으로 교도들이 재배해서 공급한다. 밭농사와 된장 청국장 메주 사과식초 등의 판매로 1년 수입이 1천만원 이상 됐다. 이렇게 해서 모아진 돈이 2억원. 이 모두가 교도들이 사심없이 동참해줬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일을 마쳤을 때나 명절 때, 함께 참여한 교도들에게 잊지 않고 선물로써 감사의 뜻을 전한다.

3월 들어 중앙총부 식당 입구에 사창교당 된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정산종사탄생100주년 기념사업 성금을 희사하기 위한 사창교당 교도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된장이다.

이 교무는 요즈음 유료양로원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다. 현재 장성군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 한 곳 있을 뿐이다.

이 교무가 이 시골에 유료양로원을 지으려고 하는 것도 계기가 있다. 3년전 상무대가 이곳 삼계면과 삼서면으로 이전해 오면서 군인과 군인가족 등 1만여명이 이사와 땅값이 치솟았다. 할머니 한 분이 밭을 팔아 1억원을 받았다. 서울 등 객지에 사는 아들 다섯이 달려 왔다. 모시고 살겠다고. 2천만원씩 고루 나누어 주고 아들집을 전전하며 살던 할머니가 다시 돌아 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았다. 이 소문은 지역에 퍼졌고, 이제는 죽기 전에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게 이 지역 노인들의 인심이다. 노인들의 특성상 고향을 떠나기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의료시설이나 휴양시설이 갖춰있지 않은 이곳의 사정을 아는 이 교무가 이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업.

현재 마땅한 땅을 구하고 있다.

진정 농촌을 사랑하기에 평생 그들 곁에서 교역의 길을 보내고자 하는 이시인 교무. ‘그로 인해 전무출신을 떳떳히 할 수 있구나’하는 감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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