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의 주역 《교전》 영역하다

“제가 배운 영어를 부처님 사업을 위해 쓸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일을 하며 복을 짓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교전》 영역을 할 수 있었던 건 전생의 지은 바가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족문학론의 주창자로 <창작과 비평>을 만들고 우리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D H. 로렌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영문학자다. 2년전 정년퇴임까지 해직기간을 제외하고도 20년 넘게 서울대 영문과에서 후학들을 길러왔다.

인류의 감명으로

지난 13일 《원불교 영문교전》의 번역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올 연말이면 <정전>과 <대종경>을 합본한 공식 《영문교전》이 나올 터이니 백 교수에게 좌산종법사의 ‘번역 당부’부터 치면 1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강산이 한번 바뀌는 동안 <정전>과 <대종경>이 그의 손에 의해 세계인을 위한 언어로 변화했다. 부인인 한지성 원불교여성회장의 권유로 1970년대에 처음 교전을 읽고 ‘감명’을 받은지 30년만에 ‘전 인류가 감명 받도록’ 작업을 한 셈이다.

백 교수는 좌산종법사로부터 영역을 의뢰받고 외국 불교학계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는 번역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그래서 참여한 사람이 동양인보다 한문을 더 잘 알고 원어민이되 영문감각이 특히 더 뛰어나다는 UCLA의 버스웰 교수, 재가법사로 교리제일인 고려대 교수 최희공 원무,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화를 해온 박성기 교무 등이다. 전팔근, 정유성 교무의 번역본을 참고하여 원어민인 버스웰이 초벌 번역을 하면 백 교수를 비롯해 참가자들이 의견을 낸 뒤 합숙을 통해 토론하며 번역을 진행해갔다. 백 교수는 특히 버스웰 부부의 참여에 대해 ‘교단의 복’이라고 말했다.

향있는 세속 수도자

“서구인들이 동양철학과 불교를 찾고 있는데 그중 원불교 교리가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 서구인들은 통찰의 종교인 불교를 찾되 생활에 활용하고 현대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를 찾기 때문입니다. 아직 교단의 힘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번역된 《교전》이 출간되면 아무래도 원불교의 세계화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백 교수는 현 시대 종교의 시류와 교전 영역의 교단사적 의미를 짚은 뒤 한마디를 덧붙였다.

“번역의 완결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시대가 지나면 다시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작업을 완결태로 보지 않고 끊임없는 작업진행을 주문하는 그는 역시 진정한 철학자였다.

<정전> 번역을 마치자 좌산종법사는 백 교수에게 원기84년(1999) ‘공산(空山)’이란 법호를 내렸다. 실천적 지식인이자 중량감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끝내 “본업은 책읽고 글쓰기”라니 허공처럼 텅비어 사 없는 맑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장마기간 모처럼의 햇살속에 인왕산 자락을 함께 산책하는 내내 세속에 있지만 오래 수행한 수도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사회진보를 위한 실천

백 교수는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에 참여했다가 서울대에서 파면당한 뒤 6년만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76년 창작과비평사를 세워 민주화와 분단 극복을 위해 노력했고, 96∼9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현재는 시민참여 전문채널인 시민방송(알티브이) 이사장으로 있다.

최근 백 교수는 6월 14∼17일 평양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 남측 상임대표단장을 맡아 성공리에 수행해낸바 있다. 한반도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 행사를 통해 긴장완화와 6자회담의 물꼬를 트는 등 관련 성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축전 직전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며 인원축소 파장이 일자 평양을 방문해 협상을 하는 도중 백 교수에게 내내 드는 생각은 ‘만일 좌산종법사님이라면 이 때 어떻게 했을까?’였단다. 그래서 어른의 힘이 필요한 것 같다고 축전공동집행위원장이었던 정인성 교무(문화사회부차장)가 밝혔다.

현재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7월20∼25)를 위해 방북중인 백 교수에게 올해 남은 숙제가 또하나 있다. 오는 8월 15일 남쪽에서 열리는 ‘광복60주년 민족공동행사’인데 현재의 여세대로라면 그가 이끄는 ‘남북 만남’이 통일을 위한 각종 길목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이처럼 백 교수의 학문적, 실천적 영역은 한 국면에만 협소하게 가둬놓기 힘들다. 그래서 고은 시인은 “백낙청, 그 앞에는 ‘대지의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골짜기나 유역의 지식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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