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13장 (2)

10인 1단의 단원들은 병든 세상과 도탄에 헤매는 창생을 구제할 투철한 대서원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9인 단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오롯한 신성으로 단장인 대종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사무여한의 정성으로 기도하였다. 이는 구인단원 각자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증명하고, 각자의 몸에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는, 새 회상 창립의 대 역사이다.

기도 방법에 대한 당시 제자들의 구술자료에 따르면, 기도는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여 원기 4년(서기 1919년) 음력 3월 26일에 시작하여 음력 7월 16일까지 100일을 정하여 놓고, 매월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날 기도식을 하였다. 치재 방식은 마음 청결을 위주로 하여 계문을 조심하며 기도일념으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기도 당일 오후 8시 일제히 옥녀봉 조합실에 모여 단장인 대종사의 지도에 따라, 9시경에 단원들은 각자의 기도장소로 출발하여, 노루목 뒷산 중앙봉을 중심으로 8방의 방위 각 봉우리에 자리를 잡고,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일제히 기도를 올렸다.

대종사께서는 기도의 시작과 끝남에 조금도 시차가 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시로는 극히 희귀한 회중시계를 단원 각자에게 주어 모든 일이 어김없도록 지도하였으며, 기도 장소에 단기를 제작하여 세우기도 하였다. 기도를 시작할 때는 먼저 향과 초, 청수를 진설하고 다음은 헌배와 심고를 올린 뒤 축문(기도문)을 독송하였다.

당시 축문은 “∼대범 사람은 만물의 주인 이옵고 만물은 사람의 사용물이며, 인도는 인의의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방편이니,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 이어늘, 만근이래(輓近以來)로 그 주장이 위를 잃고 권모 사술이 세간에 분등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울새, 본 단원 등은 위로 사부님의 성의(聖意)를 받들고 아래로 일반 동지의 결속을 견고히 하여, 시대에 적합한 정법을 이 세상에 건설한 후 나날이 쇠퇴해 가는 세도인심을 바로잡기로 성심 발원이오니, 복원 사은이시여 일제히 감응하시와 무궁하한 위력과 한없는 자비로써 저희들이 원하는 바가 이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근이래(輓近以來); 몇 해 전으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지는 상태

<화정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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