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특집 / 서울구치소 교화현장에서 보내온 편지

▲ 그림 / 우세관
‘구치소’는 일반인들에게 좋지 않은 인식과 함께 죄인을 수용하는 국가의 시설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미결수를 수용하는 시설’로 풀이하고 있지요.

‘서울구치소’는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우리나라 교정행정의 일번지입니다.

원불교에서도 이곳은 교정교화 봉사활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에서 이곳 서울구치소에 교정교화 봉사활동을 해온지 어느덧 20년이 넘어갑니다. 실제 봉사활동을 해보니 그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꾸준하게 이 일을 해온 많은 봉사자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매우 컸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낮은 곳 교화 일번지

서울구치소에는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종교단체에서 모두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원불교도 서울교구 소속 은혜의 집 강해윤 교무를 중심으로 자원봉사자 20여명이 무아(無我)의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그 규모, 체계, 대내외적 인식들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지난해는 교정교화 활동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간의 활동을 주거생활에 비유해 본다면 이전이 월세 신세였고 이제는 월세를 면해 등기전세단계까지 왔다고 보겠습니다.

불교나 천주교 등 다른 종교는 벌써 오래전부터 교정분과로 인정받아 종교협의회의 일원으로 활동해 왔으나 원불교는 그렇지 못하고 다른 종교 사이에서 틈새 활동을 해온 것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2월 ‘원불교분과’로 공식 승인을 받았으니, 이는 요즘 군에서 원불교 군종장교를 임관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매우 중요한 발전입니다. 중요한 국가기관의 공인종교 인가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매주 목요일은 ‘원불교의 날’

매주 목요일은 교정교화활동에 관한한 원불교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날은 오전10시부터 오후3시 반까지 여사법회를 시작으로 남사법회, 개인집회까지 빈틈없는 하루의 행사가 진행됩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안양 인덕원 전철역 2번 출구에 봉사자들이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하고, 교무님 차와 봉사자의 차에 분승하여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구치소로 향합니다.

삼엄한 경비와 긴장감이 감도는 차가운 철문을 몇 개 지나서 먼저 여사법회에 임하게 됩니다. 봉사자들이 계단으로 올라가기 전, 흘러나오는 원불교 성가를 듣게 되면 괜스레 얼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어서 그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사회가 복잡하고 기능이 다양해질수록 수인(囚人)의 숫자는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죄인이란 굴레를 쓰고 수감 중인 사람들이 추운 겨울은 더 춥게, 더운 여름은 찜통 같은 더위 속에 생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냉난방시설과 밥상이 새로워지고, 복도엔 정서함양을 위한 그림과 화분이 배치되는 등 분위기와 환경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수감 중인 사람들이 메마른 정서를 재충전하고 보충하지요. 이들이 다시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데서 우리 봉사자들은 봉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곤 한답니다.

남자법회엔 100여명이, 여자법회엔 30여명이 참석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수인들의 법회참석 인원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봉사자들도 단순히 봉사활동의 단계를 벗어나 전문봉사자인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사람만도 교무님을 비롯해 18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어느 한 봉사자는 무려 8년간이나 법회 때마다 200여명 참석자들에게 간식을 제공해오고 있으며, 그 비용만 해도 한번에 수 십 만원씩 소요되니, 같은 봉사자도 감히 엄두내지 못할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형수 개인법회

사형수 개인법회는 교정교화의 꽃이라고도 하지요.

어떤 연고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이 확정되어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원불교의 첫 사형수와의 만남은 이 청년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이 그의 유일한 보호자이며 대화의 상대이기도 합니다. 벌써 4년째 계속하고 있는 이 개인법회는 한 젊은 사형수를 독실한 종교인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착실하게 교리공부를 하고, 대종경 사경도 2번을 했습니다. 참회문까지 외울 정도로 독경을 절실히 하고 있으며, 마음공부의 경계에 대하여도 몇 십 년 교당을 통해 공부해온 우리보다도 더 낫답니다. 구치소내 내 수인들 사이에서도 고민상담과 문제해결에 솔선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요. 변화는 극단의 나락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죠.

세상 밖의 불빛, 사람의 따뜻한 인정이 그리워 밤에 창 밖의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보기위해 밤을 지새우는 젊은 한 사람의 고뇌를 우리와 사회가 보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사형제도 폐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히 주장되고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로 이런 청년이 출소하여 사회와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고 새로운 사람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교정교화의 진정한 목적이고 보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의 희망대로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우리 봉사자들은 이 청년을 위해 조그마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 사람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그 날, 그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도록 그의 명의로 적은 돈이나마 통장에 예금을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공식 분과승격

몇 년 전 원불교 집회에는 자진 참석자가 전무했었는데 이제는 자진 참석자만 해도 4∼50명이 넘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강해윤 교무님과 봉사자들의 혈심어린 노력의 결실이라고 봅니다.

“왜 원불교가 서울구치소에 들어와서 귀찮게 하느냐?”라는 야유와 서러움을 참고 견뎌낸, 열과 성을 다한 무아봉공(無我?公) 정신의 승리라고 하겠습니다.

서울구치소내 종교협의회 회장이신 서성운 스님은 지난해 원불교의 공식 분과승격에 대해 ‘대단한 성공’ 이라 표현하시면서 우리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교정교화와 관련된 이러한 위상의 변화는 우리들 봉사자 뿐 아니라 교단에 대해서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봉사자들에게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이 요구됩니다. 구치소라는 특수한 장소에 적용되는 각종 법규의 준수는 물론 재소자나 관련 공무원들에게도 원불교인 다운 모범을 보여야 하지요. 서울구치소에서의 교정교화 봉사활동은 어느 정도 정착되었지만 다른 교정기관에서의 교화봉사에 대한 인식부족과 봉사자들의 적극성 결여, 이에 더불어 교정교화 담당공무원들의 나태한 사고방식 등에도 문제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전국에는 교정교화 봉사활동이 가능한 곳과 요구되는 곳이 수 없이 많은데도 원불교 교정교화 활동이 지지부진한 것도 앞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교구처럼 봉공회와 같은 재가단체가 사무국과 협력하여 담당기구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 출재가 교도들은 명대실소(名?實小)한 조직이 아니라 진정한 종교성의 실현을 위해 보다 낮은 곳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지역별 교정교화 모임들이 탄생되면 총부에서 총괄하는 본부가 생겨 점차 체계가 생기겠지요. 이것이 자율적으로 이웃 종교들과 대등하게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내부에서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 사고 없이는 더 나은 교정교화 활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라고 바랍니다

이곳에도 노대종교와 원불교의 다른 차이가 있겠지요?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님은 1년에 한번씩은 꼭 교정현장에 참여하십니다. 그래서 재소자의 아픔과 외로움에 위로기도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치게 해주시는데 이러한 행사가 내심 부러웠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은혜의집 강해윤 담임교무님께서 목요일 하루 3번의 법회를 위해 심혈을 다해 노력하고 계시지만 교단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있다면 좀 더 바람직한 봉사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서울시내에 있는 다른 구치소로 활동영역을 넓히고자 담당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옛날 서울구치소 담당 공무원과 같이 귀찮다는 듯이 “몇 개월 후에 보자”고 하며, 같이 동행했던 관계자 분에게 “왜 원불교를 도우느냐?”는 등 부정적인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언젠가는 열리겠지만 교단의 지원과 대응들이 없음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들 서울구치소 교정교화 봉사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조용하게 교도소나 구치소등에 봉사하시는 분, 다 우리와 같은 그런 처지를 묵묵히 견디며 애쓰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종교를 떠나 격려와 성원을 드립니다.

<원불교교정교화봉사회장으로 서울교구 봉공회와 은혜의집의 서울구치소 교화 봉사를 10년째 이끌고 있다. 신림교당 교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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