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은 원기9년(1924)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교명을 선포하며 새 회상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또한 ‘불법연구회 규약’을 채택해 이에 따라 대종사를 총재로 추대하며 법에 의한 교단 통치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후 교단은 원기33년(1948) ‘원불교’라는 정식 교명을 공시하고 《원불교교헌》을 반포했다. 명과 실을 함께 하며 ‘법치교단’의 틀을 확고히 다진 것이다.
이번 지면에서는 이같은 전통 아래 최근 논의가 되었던 법규 관련 내용을 살펴보고 결복교운을 맞이하며 원활한 법치교단 운영을 위한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교단 운영의 근간은 《원불교헌규집》이다. 헌규는 교단에서 시행하는 교헌·교규·교령·규칙을 통칭하는 말로, 교헌은 교단의 기본헌장이며 교규와 교령은 시행규칙과 시행령을 말한다.
법규 의한 모범적 교단운영
이 가운데 법규의 중심이 되는 교헌은 원기33년(1948) 처음 제정된 이후 원기44년, 49년, 62년, 72년, 84년 등 지금까지 5차례 개정되며 오늘날 교단 운영의 기틀을 확립했다. 특히 원기84년 5차 개정에서는 국외총부 건설에 대한 항목을 삽입해 국제화시대를 향한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초기교단부터 시작된 법규에 의한 모범적 교단 운영은 세인들에게 놀라움을 주었고 이에 대한 내용이 《대종경》 실시품에 실려 초기교단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당시 일부 신흥종교의 사회적 물의로 인해 관변의 간섭과 조사가 잦았음에도 언제나 털끝만한 착오도 없음을 보고 관원들이 “불법연구회의 조직과 계획과 실천은 나라를 맡겨도 능란히 처리하리라”한 것이 그것이다. 이같이 법에 바탕한 교단 운영은 기준에 의한 합리적 운영을 가능하게 해 효과적인 인적 물적 자원의 운용으로 오늘날 원불교가 국내 4대종교로 자리매김 하는데 큰 동력이 되었다.
변화 대응할 법제정 불가피
초창기부터 철저하게 법치교단의 틀을 확립해온 교단이었으나 점차 교단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 많은 규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급변하는 시대흐름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법규 마련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한편 일반인들의 법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출재가교도들의 교단 및 교당 운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규범에 의한 운영이 점차 요구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교단은 이같은 대중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법규운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인사와 법위사정, 정책사업 추진 등은 해당부서에서 관련 규정에 의해 적법하게 처리되고 있다고 하나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안에 대한 법 해석에 있어 집행부와 대중이 입장 차이를 보이거나 관련 법규가 없어 이견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는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법 개정으로 불신을 받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향후 원활한 법치교단 운영을 위해서 교단적 노력이 시급한 형편이다.
공감 못 얻은 법개정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자전무출신 정복문제는 관련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논의를 더욱 가중시킨 일례다. 여자전무출신 정복은 ‘검정치마 흰저고리’로 교단을 대변할 만큼 중요한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지만 의복관련 법규가 없어 교단 내부적으로, 그것도 국내와 해외가 서로 다른 형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금년 3월 여자정화단 단장·중앙훈련에서 현 정복을 교무 품과자 전원과 도무 및 덕무 품과 가운데 정녀만이 착용한다고 보고해 품과별 차등 또는 정녀와 숙녀 차별 우려를 낳았다. 해외에서는 현지인 교화를 위한 양장정복 요청이 이루어져 향후 3년간 미주동부교구 여자전무출신 희망자에 한해 양장제복과 머리자율화를 시행하기로 했으나 중앙총부에서 머리자율화만을 다시 철회하여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기89년의 ‘전무출신 인사임면 규정’ 개정과 원기90년의 ‘전무출신 정년연장’은 법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된 경우다.
원기89년 개정은 ‘교헌에 임기가 규정된 선출직은 그 임기 만료시까지 정년을 연장한다’와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수위단회의 결의와 종법사의 재가를 받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그 기간은 3년을 초과할 수 없다’를 추가했다. 또한 원기90년에는 68세이던 전무출신 정년을 70세로 연장했다.
문제는 당시 개정이 특정 시기,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대두된 것이다. 즉, ‘완숙한 경험의 교단적 활용’보다는 ‘특정인의 임기 연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된 것이다. 또한 당시 개정은 퇴임 전무출신 수용문제가 나온 직후였던 까닭에 대중들의 씁쓸함을 더했다.
교단은 90여년의 짧은 역사를 지내오며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고 시대에 부응하는 법규를 마련하기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복교운을 열어갈 원기100년을 맞이하며 법치교단의 기틀을 한층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교단 전 구성원의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교단관계자는 “법규를 제정할 때는 무엇보다 교법정신에 바탕해 미래지향적 안목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본의를 충분히 전달해 대중의 공의를 얻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의를 얻었을 때 비로소 그 법규가 힘을 얻어 시행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대중이 법을 가볍게 알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단에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법규 시행에 있어서도 과거와 같은 가족적 정의를 넘어 적법한 절차에 의한 바른 시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성원간 정의도 중요하나 교단의 인적 구성이 더욱 다양해지고 교화상황 또한 다변화되는 시대를 맞아 시스템 교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에서, 그 근간이 되는 법규의 올바른 시행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단 구성원은 유연하고 진취적인 의식으로 교단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좌산종법사는 지난해 1월 중앙총부 직원총회에서 “지금은 교단이 종래의 가족적 분위기를 벗어나고 농경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바뀌는 전환점에 서 있는 중요한 때”라고 전제하고 “지금까지 교단이 정의로 운영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앞으로는 더욱 법치주의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치교단의 핵심 수위단회
이상과 같은 대중의 공의 수렴과 바른 법집행에는 무엇보다 교단 최고결의기구인 수위단회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위단회는 종법사 선거에 관한 사항, 교서 편정과 교헌 교규의 제정 및 개폐에 관한 사항, 교헌 교구의 판정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중앙집행기관과 감찰기관의 수장인 교정원장과 감찰원장 임면 동의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기 때문이다.
교단은 행정·사법·입법기구로 각각 교정원·감찰원·중앙교의회를 두고 있으나 수위단회는 그 상위기관으로 사실상 법제정과 법집행을 포괄하는 교단 운영의 핵심이다. 그런 까닭에 수위단회의 역할과 여기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올해 선출될 수위단원은 향후 6년간 교단을 이끌며 개교100주년을 준비하는 입장이기에 공의 수렴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함께 법제정과 집행에 따른 실무자의 전문성과 사명감도 한층 증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규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요청은 갈수록 높아가나 현행과 같은 순환 인사체제에서는 그 같은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경륜과 함께 대중 공의로 운영되는 교단적 특성을 감안할 때 실무진의 전문성과 사명감 확보는 원활한 경륜 실현과 합리적 대중 의견 도출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사안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무사안일, 책임회피 풍토로 인해 ‘경륜만 있을 뿐 변화는 없는’ 상태로 희망이 꺾여 교단은 점차 시대흐름에 뒤쳐지게 될 것이다.
경륜과 공의의 조화
이와 함께 법규에 대한 교단 구성원의 인식 또한 새로워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도와 조직은 결국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만큼 얼마나 깊이 있는 관심과 실천으로 법규를 활용하느냐가 향후 법치교단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관련법규를 정확하게 이해한 후 대중의 공의를 통해 적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찾는 것이 교단을 살리는 구성원의 자세일 것이다.
좌산종법사는 지난해 교단경영지침법문 《현장교화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통해 “교법정신이란 ‘교리정신’과 ‘헌규정신’과 ‘창립정신’을 총칭한 말”이라며 “세 가지 교법정신은 교단의 생명이니, 이 생명력을 길이 살려 나가야 교단발전이 무궁할 것”이라고 법문한 바 있다.
원기100년을 맞이하며 교단 구성원 모두가 이 교법정신에 바탕해 법치교단 운영에 노력할 때 결복교운을 맞이하는 교단 또한 탄탄한 반석위에 올라 안정과 발전을 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