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닮아가기 교육
‘왜’, ‘어떻게’ 질문 가능한 교육여건 필요
자발적 동기 유발, 적절한 보상체계 수반되어야

김도공 교무 / 원불교학과 교수·서원관 지도교무

‘대종사님 닮아가는 법통제자’ 원불교 사회에서 너무도 익숙한 말. 그러나 이미 열반하신 대종사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 음성과 용모 가르침을 한 번도 직접 받들지 못한 후진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닮아가야 할 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혹자는 이야기 한다. 성자께서 남겨주신 정전과 그 가르침이 있지 않느냐고. 숙겁의 인연으로 이 회상에서 다시 만난 인연이기에 충분히 그 가르침을 받들 수 있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대종사님 닮아가기 교육, 우리가 은연 중 빠져 있는 함정 같은 것은 아닐까? 원기 100년대를 앞두고 있는 예비교무 교육의 문제 앞에서 ‘닮아가기 교육’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처화(진섭)가 어떻게 대종사님이 되었는가? 하늘은 왜, 바람은 어디서,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 죽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어린아이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왜(Why)라는 질문이 결국에는 삶과 진리 및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을 하게 하였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기에 대종사님이 되신 것이다. 나와 우주에 대한 강한 의문이 대종사님의 삶을 있게 만든 출발점이다.

예비교무 교육의 문제 해결과 그 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이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라는 질문, ‘어떻게’ 라는 질문이 가능한 교육여건을 마련하여 이를 예비교무교육에 있어서도 반영하고 도입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대종사님 닮아가기가 아닌 출가자 개개인이 보편적인 인간의 근본문제와 개인문제에 깊숙이 천착했다가 빠져나오면서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 인간으로 바로 서게 된다.

자각을 통해서 인간으로 바로 선다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출가자라면 그 과정을 꼭 거쳐야만 한다. ‘나’라는 한 인간으로 바로서고 거듭나야 다른 사람도 세워줄 수 있는 교화자가 될 수 있다. 철저히 인간의 근본문제에 빠져들어 고민하고 번민해보다가 그것을 깨고 나와야 한다.

교육(education)은 감추어진 것을 밖(e-)으로 끌어내는(-duca) 것이다.

인간의 내부에서 무한이 갊아져 있는 그 가능성의 요소가 있음을 믿고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교육이다. 이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내용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피교육자의 강한 자기 동기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부차적으로 절적한 보상체계도 예상되어 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동기 유발하는데 도움이 된다.

강한 동기가 부여된 사람에게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교법이 될 것이다. 대종사님의 교법이니 우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서 온 몸과 마음에 체질화를 시켜야 한다는 스승님들의 말씀에 녹아있는 간절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 고민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는 알음알이가 있게 만드는 교육이 참다운 대종사님 닮아가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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