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교법인격화 2. 법계인증 이룬 구인선진

법계인증은

신명과 스승과 참나가

하나되는 세계인으로

태어남을 뜻한다.

길룡리에서도 구호동·영촌·돛드레미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은 선진포에서 해가 뜨고 삼밭재로 해가 진다는 통념을 가지고 산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활동범위를 중심으로 인식체계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통념에 근거하여 9인 기도봉은 대종사 대각을 한 노루목 뒷산을 중심하여 당신이 태어나고 주재하는 도실 뒷산 옥녀봉(西北)을 기점(起點)으로 건감간진손이곤태 8괘의 순에 따라 봉만을 잡게 된 것이다.

기도봉 배치는 정확한 실측보다

역사적 정서에 비중을 두어야


지난 봄 필자는 영산에 머물면서, 선진포 건너 산등성이에서 해가 뜨고 삼밭재에 가까운 설레바위 산마루로 해가 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9인 기도봉 배치는 과학적인 측량에 의해 봉만을 정한 것이 아니다. 대종사와 구인 제자들의 혼과 숨결이 담긴 역사적 정서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기도봉은, 좌표 실측이 정확한 바위보다 산봉우리를 잡는 것이 우선되었다. 기도봉 중에 눈썹바위가 곤방(坤方: 남서향)으로 거의 정확하게 방위에 일치되고, 상여바위는 팔괘방위의 기점이 되는 건방(乾方: 서북향)에 가장 가깝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체 봉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도 없는 노루목 뒷산이 중앙봉이 된 것은 대종사 대각을 한 뒷산이기 때문이고, 옥녀봉이 8인 방위의 첫 기도봉이 된 것은 그 아랫마을에 당신이 태어나고 구도 발심하고 단장이 주재하는 구인단원의 본부 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미년 법인기도의 기간은 120일 중에 열흘 간격으로 도합 12 차례의 산상 기도였다. 기도봉 방위는 주역의 문왕팔괘를 따르고 있으나 번호는 그와 다르게 건감간진손이곤태 순을 따랐다. 대종사는 번호를 응용한 역학에 괘념하지 아니하고 오직 단원 각자의 방위에 따라 세계 교화의 사명을 부여하였다. 9인 단원의 방위는 대종사팔괘에 준하여 다음에 의한다.

1. 방위는 건감간진손이곤태의 팔괘 순대로 번호를 매긴다.

2. 팔괘 방위는 건방(乾方:서북향)을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3. 한번 준 방위는 단장 유고시나 중앙 진급 등 큰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4. 방위 순은 나이순, 신장, 몸무게, 가나다, 공과(功過), 선착순 등에 의해 매겨지지 않으며 오직 단장의 판단에 의해 정해진다.

5. 각 단원은 세계교화 사명을 부여받은 세계인으로서 방위정신이 투철하게 서 있어야 한다.

팔괘 방위는 세계교화 사명 부여

건감간진손이곤태 팔괘 방위는 단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짠 것이 아니다. 단원들에게 시방세계 일체 중생을 교화하라는 사명감을 주기 위해 방위를 준 것이다.

기미년 산상기도 당시 왜 기도봉에 방위를 나타내는 팔괘기를 꽂았는가를 생각해보라. 팔괘 방위는 세계 교화의 근간으로 오대양 육대주의 그물망 짜기 교화이며 이 상징성을 놓쳐버리면 세계교화는 지역교화로 주저앉게 된다.

팔괘기는 한때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정식으로 회상을 설립한 뒤에 회기(會旗)로 정하여 제1회말 기념총회와 대각전 준공기념 때 전면에 게양하였고 대각전 불단 중앙의 장식 문장으로, 또 교리도 상단에 팔괘 문장을 올렸다. 회기[敎旗]를 일원기로 바꾸고 교표로 제정할 때도 일원상을 중심으로 8괘를 여덟 장의 연잎으로 변용하여 방위 정신을 살렸다. 팔괘는 시방 세계 일체 중생을 모두 교화하겠다는 대종사의 경륜과 의지가 담겨 있고 지금까지 수위단원의 방위로 전승되어 왔다. 수위단회는 팔괘 방위를 단지 형식적인 수사로만 사용하지 말고, 팔괘 방위의 진정성이 무엇이며 그 효용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최초의 단조직 그 원형질을 살려야 한다.

사실 백일기도, 천일기도, 만일기도 가지고 하늘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희생정신이 있어야 천의를 감동시킬 수 있으며 만사형통이 된다.

생명 희생이란 몸이 죽고 정신으로 다시 살아남을 말한다. 몸이 ‘나’라는 물질중심의 사고방식과 가치체계를 청산하고 정신중심의 참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종사는 대각하고 법명을 중빈(重彬)이라 하여 ‘빛으로 다시 태어남’을 천명하였다. 새로운 정신의 탄생은 ‘빛’으로 상징된다. 두 번째 법명 송규(?)도 ‘밝은 세상’을 예고하는 규성(?星)의 탄생을 의미한다.(出名年月日: 戊午七月二十九日) 기미년 칠월이십육일(음)에 여덟 제자에게 법명을 준 것도 공인(公人) 내지 세계인(世界人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남을 축하한 것이다.

생명희생은 몸이 죽고

정신의 주체세력 확립하는 것


천지신명은 어떤 정성에 감동하는가. 대종사 말하였다. “남음 없는 마음으로 창생을 위하는 사람에게 어찌 천지신명이 감응하지 않으며, 또 그 소원에 성공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천지와 나는 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업장에 절인 내(몸)가 없어야 천지와 하나 되고 참나가 드러난다. 이것이 천지 감응이다.

대종사는 최후 희생일에 도실 가득 음식상을 차려놓고 9인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비장하고 숙연한 그 자리에 아홉 제자들은 몇날 며칠 정성껏 숫돌에 갈아 새파랗게 날이 선 비수를 앞에 놓고 오히려 희색이 만면하였다. 천지신명의 조화인가. 거기에는 아홉 제자들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오직 한 사람, 두루마리 한지에 건감간진 순대로 아홉 단원이 각기 이름을 썼건만 그들은 없었고 스승님만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죽고 시방 세계의 일체 생령이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면 이 어찌 영광이 아니오리까”

백지에 무인을 찍는 것은 나 없음을 확인하고 스스로 하늘임을 체득하는 자증(自證) 행위이다. 이것은 천지신명의 감응이고 진리의 조화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 없음’은 천지(우주 세계) 자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명(神明)과 스승과 참나가 하나가 된 것이다.

몸이 ‘나’라는 물질중

사고방식 청산해야 ‘참나’ 회복해


그는 확연히 진리를 체득하고 거듭 난 하늘사람으로서 세계인, 봉공인, 법사이다. 그래서 대종사는 그들에게 이날을 기념하여 새 이름 법명을 주었다. 이를 일러 전무출신자라고 하며, 그 정신을 사무여한 무아봉공의 창립정신이라고 말한다. ‘사무여한 무아봉공(死無餘? 無我?公)’은 새 하늘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수행방법이요 창립정신이다. 여덟 자 이 암호문, 이 메시지를 깨쳐 활용하여야 우리 공동체가 거듭날 것이다. 8월21일 이날은 인천(人?)이 하나되고 세계인으로 태어나는 축제날이다. 시방 세계교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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