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첫째 그림은 티벳 불교의 순례자가 오체투지 삼보일배로 기도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한 겨울에 차가운 바닥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림에는 똑 같이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순례자는 오체투지 삼보일배를 하면서 성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몇 달이 걸리는 힘든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는 생령 있는 모든 것들의 행복을 바라고 그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 하나로 기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은 구하려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남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차가운 바닥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염원하며 당신의 추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식을 위한 일심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순례자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 두 장 모두 기도 하는 모습이지만 그 그림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은 사뭇 다릅니다.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에 따라 느껴지는 경건함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주위를 위한 작은 기도보다는 넓고 크게 올리는 기도에서 더 깊고 숭고한 정신을 보게 됩니다.

정산 종사님께서도 “큰 서원을 세우고 기도를 하고, 제 몸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세상과 회상을 위해 빌면 그 공덕이 훨씬 크다"고 말씀하셨고, 성철스님께서도 “기도는 전부 남을 위해서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 하는 좁은 기도보다는 일체중생의 행복을 비는 넓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큰 마음으로 모두를 위한 큰 기도를 한다면 탐욕은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됩니다. 욕심이 없는데 어떻게 미움이 생기며, 싸움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서로 싸우는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슬픈 일들이 기쁜 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이기적인 생각들을 돌려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모든 생령들의 행복과 그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순례자를 한 번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순례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 받기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받기만 한 우리는 그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빚은 갚아야 합니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남을 위해 기도한다면 충분히 갚을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한 기도가 제일 좋은 불공이라고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올리는 넓고도 큰 기도로 복 짓는 생활을 합시다.

은정실 교도·유성교당(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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