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니라.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느니라. 이런 순수함이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애니메이션 <오세암>에 나오는 보살의 대사다.

하늘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고 엄마의 모습이 부처의 모습이고 부처의 모습이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오세암>은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들에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법, 순수로 돌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다섯 살 아이가 부처가 되었다는 내용의 <오세암>과 비교되는 영화가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다. 서울에 사는 일곱 살 아이가 저 멀리 산골마을 외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오락과 게임, TV와 인터넷 등으로 문명에 길들여진 아이에게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너무나 불편한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를 병신이라 부르며 못된 짓을 서슴지 않았던 버르장머리 없는 그 아이도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결국 순수로 돌아간다. 이제 그 아이에게도 쳐다보고 그리워할 고향의 하늘이 생긴 것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의 한 장면이다. 한 사내가 철로를 가로 막고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를 온몸으로 절규한다. 박하사탕의 알싸한 맛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영화관을 찾았던 관객들은 졸지에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불편했다. 관객들이 뭔지 모를 불안감으로 몸을 뒤척이는 그 순간에 기차는 그대로 그 사내를 통과했을 것이고, 그 사내의 몸은 형체도 없이 죽어 나자빠진 아스팔트위의 들짐승처럼 처참하게 형편없이 뭉개졌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그 사내는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그는 죽어서 비로소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그 곳으로 달려간다. 너무 망가졌기에 살아서는 갈수 없는 그 곳,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그 곳에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첫사랑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젊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글을 쓰는 이 시간이 다행스럽게도 반성의 시간이 돼버렸다. 바쁘게 살아왔다.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문명을 즐기며 이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조차 인색해졌다.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잔인해지고 적당히 타협하고, <박하사탕>의 그 사내처럼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파멸의 길은 아닐런지.

 <한국예술전문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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